황석영 소설가

내가 1989년에 ‘무단방북’을 감행하고 나서 망명과 투옥을 겪었으며, 그야말로 합법적으로 처음 방북했던 것이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지난번에는 다른 사회단체들의 민간교류에 동행한 방문이었으니까, ‘문학적’인 합법적 방문은 이번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처음인 셈이다.

내가 처음으로 길을 열었다고는 감히 말할 자격이 없겠지만 남·북의 문학적 소통에 다소 보탬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남·북의 문학인 대회는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나서 한두 차례 시도는 되었지만 당시의 격동하는 정국 속에서 우선적인 일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니 사실상 일제(日帝)의 식민치하에서 우리 말과 글을 잃어버리고 살다가 분단된 채로 60년이 지나서야 처음 남·북의 문학인들이 마주앉게 되었다.

흔한 말로 북한에 ‘문학이 존재하는가’하는 질문에 대하여는 우리와 가치관이 다르다는 대답 이외에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사회주의 중국의 예를 들어 말하자면 아무리 서구식으로 개방되었다고는 해도 엄연히 당의 검열이 있게 마련이고 모든 예술의 기본 바탕은 표현의 자유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지적할 수는 있겠다.

하여튼 나는 남한의 다른 문인들에 비해서는 북한 사회와 문인들을 조금 알고 있었으므로 동료들이 북한에서 받는 느낌과 인상을 객관적으로 곁에서 지켜볼 수가 있었다.

말로는 우리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거나, 우리는 문학만 가지고 충분히 소통할 수가 있다고 하지만, 곳곳에서 말로 인한 감정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고, 서로의 생활 습관이 다른 데서 오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나오기도 했다.

강한 통제 속에서 수많은 정치적 쇼윈도 앞을 그냥 지나쳐 흘러다니면서 저쪽의 삶의 이면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저들 북쪽의 문인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정(市井)으로 찾아가 주점에서 술잔도 기울이고 그들의 집도 방문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면 그야말로 하나된 문학적 체험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러한 통제는 우리도 더하면 더했지 뒤지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들으면서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절반쯤은 소박하게 참 어려운 모양이며 안되었다는 소감이고, 많은 사람들은 전보다 더욱 북쪽 사회의 모양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의 상황이 달라지고 풀려가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 의견이 일치했다.

어느 민족에나 타자에 대하여 성난 얼굴, 기쁜 얼굴, 싸우는 얼굴, 사귀자고 웃는 얼굴 등등 여러 가지의 얼굴이 있다면, 분단된 이래로 북은 민족의 한쪽 측면인, 주장하고 싸우는 역할만을 해오면서 지난 15년 동안 스스로를 소진시켜 왔다.

나는 그러한 흔적들을 오랜만에 만난 북쪽 문인들의 얼굴과 당국자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으며, 주민들의 행색과 무엇보다도 쇠락해가는 기념적 건물들에서 살필 수가 있었다.

내가 처음 방북했던 그때만 해도 통제는 너그러운 가운데 너나 없이 열정이 있어 보였다. 어찌 다 이 모든 속내의 말들을 글로 쓸 수가 있을 건가.

이 봉쇄를 버티는 가운데 저들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나는 북의 문인들을 대하면서 울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안쓰러웠다.

그러나 우리가 너나 없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네 산하의 의연함과 아름다움이었다.

백두산 고원지대의 가없이 전개되는 가문비나무·분비나무· 입갈나무의 광대한 숲의 바다, 그리고 천지의 검푸른 남색, 운해(雲海)를 뚫고 떠오르던 일출(日出)과 마주보며 저물어가던 보름달, 흰 구름을 두른 남북 포태산 너머로 올망졸망 흘러내려간 고원의 산과 저 아득한 산맥 아래 어디쯤 있다는 개마고원의 연봉들, 거기서 우리는 우리의 구호인 “문학은 하나다!”를 외치면서 지상에서 정치가 제약한 모든 장벽들을 뛰어넘었다.

저무는 청천강 변에는 예전 그대로 벌거숭이 아이들이 헤엄을 치고, 어른들은 그물로 고기를 잡고, 저녁새는 깃을 찾아 날아갔다. 내일 어느 맘때 우리가 외친 슬로건이 삶으로 실현될 것인가.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갈길은 아직도 멀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우리의 ‘말’은 정말로 같은가. 그 말과 단어의 의미들이.

그러나 다르다면 동일한 언어의 의미를 문학 속에 실현해내는 일이 우리들‘분단시대 문학’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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