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준 애틀러스그룹 대표/미 MIT 정치경제학 박사

제1부 – 북한과 IT(정보기술) 관계를 이해하는 법

가수 나훈아씨의 공헌은 크다. 왜냐하면 ‘사랑이 무엇이냐’라는 복잡한 질문에 ‘눈물의 씨앗’이라고 명쾌한 정의를 내려주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사랑에 못지 않게 모호하고 복잡한 말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IT라는 말이다. 인터넷인가? 전자상거래인가? 보통사람들에게는 금방 윤곽이 안 잡힌다. 아무튼 첨단의 기술이요 생활패턴인 것은 막연히 안다.

그런데 이것이 아직 낙후하고 폐쇄된 북한과 결부될 더 의아하다. 한국의 기업이 북한에 가 IT사업을 한다니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북한이라는 사회와 어떻게 연결하여 이해해야 할 것인가?

IT란 무엇인가?

IT란 단순히 말하면 information technology, 즉 정보기술의 약어이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서 가지는 의미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좁은 의미로 컴퓨터 등을 이용하여 인간생활에 불가결한 정보처리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기술전반을 가르킨다. 흔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분한다.

둘째는 넓은 의미로 새로운 정보처리기술들이 가져오는 사회적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북한과 IT”라 할 때의 IT는 이러한 넓은 의미의 말이다. 정보처리란 동물의 기본적 행위이다. 동물의 울음, 봉화, 전보를 거쳐 현대의 전자메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보처리 행위이며 단지 그 복잡도와 사용기술이 다를 뿐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과 IT라는 말에 아무런 위화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IT혁명과 디지털사회

그래도 북한과 IT라는 말에는 아직도 뭔가 어려운 구석이 있다.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IT란 종래의 정보처리가 아니라 소위 “IT혁명” 후에 일어난 고도의 정보처리를 가르키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에 발명된 컴퓨터가 불어 온 IT혁명은 인류가 과거 경험한 동력기계의 발명, 전기의 발명에 못지 않는 충격과 변화를 우리 생활에 불러오고 있다.

자유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가 현재 목격하고 있는 정보처리혁명, 즉 ‘제4의 혁명’은 대체로 세 가지의 혁명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컴퓨터가 들러 붙어 서로 교신할 수 있는 통신체계를 만든 인터넷의 혁명이다. 둘째는 이 통신에 있어 인간의 감정과 의사를 0과 1이라는 수자의 조합으로 풀어 다시 쓰고 이를 압축하여 주고 받음으로써 백과사전보다 큰 정보가 인터넷을 통하여 간단히 왕래하게 하는 디지털혁명이다. 셋째는 우리가 쓰는 가전제품들이 지능이 발달하여 제각기 컴퓨터에 못지 않은 정보처리 능력을 가지게 되는 정보가전의 혁명이다.

이 세가지 기술적 혁명들이 우리 사회를 IT사회이자 디지털사회로 바꾸고 있다. 디지털 사회란 간단히 말하면 디지털화한 다양한 멀티미디어 정보처리수단을 대중이 자유롭게 쓰는 사회로서 정보유통사회이며 새로운 자본주의사회이다.

이쯤되면 ‘북한과 IT’란 말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의문과 혼돈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아직 식량이 부족한 북한. 컴퓨터보다는 전기와 의복이 아쉬운 북한에 무슨 IT이며 디지털혁명이란 말인가? 타당한 의문이다. 이러한 의문은 사회발전은 정해진 순서대로 선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제가 틀릴 수 있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왜나하면 한 사회의 발전은 반드시 구성원들의 계획만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우연과 사고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의 예를 들어보면 아직도 전체적으로 낙후한 사회이나 통신에 있어서는 오래된 기술을 생략하고 막바로 세계 최신의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후발주자의 특권이다. 한국만 하여도 IT환경에 있어서는 선진국인 일본을 앞서고 있는데 이는 계획이나 사회의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김대중정부의 결의, 한국인의 기질 등 기술이나 경제와 관련이 없는 요소들의 영향이 더 크다.

아직 식량이 부족한 북한에서 IT의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근거는 이러한 역사발전의 개연성, 돌발성이다. 그리고 북한의 발전은 다른 데보다 개연적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소수집권층의 영향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일이라는 한 개인과 그를 보좌하는 소수의 뜻이 결정적이다.

그런데 이 집권층이 IT에 매우 깊은 이해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매일 한 시간 정도 인터넷을 즐긴다는 것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필자는 북한의 최고위층을 “디지털지도층”이란 부른다. 즉 북한에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현재의 통신패러다임에 평균 이상의 기술적 이해와 사활적 이해관계의 인식을 가지고 이를 국가경제운영에 반영하거나 반영하려고 시도하는 의도를 가진 지도층”이 대두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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