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남의 위조여권 체포 사건은 적지 않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북한 정권의 후계자로 일컬어지는 ‘황태자’가 어설픈 위조여권을 들고 여행다니다 국제 망신을 당한 사실부터 의문이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왜 일본에 왔나

사건 초기엔 ‘제왕교육설’ ‘IT(정보기술) 정보수집 목적’에서 ‘권력투쟁·망명설’까지 갖가지 추측이 제기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여행설’이 점차 유력해지고 있다.

그가 일본 당국 조사에서 “디즈니랜드를 보러 왔다”고 진술한 대로 단순히 가족을 데리고 관광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가 아들로 추정되는 4살짜리 아이를 동반한 점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도쿄 디즈니랜드뿐 아니라 최근 오사카에 문을 연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구경갈 계획이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도쿄신문은 “한국측 정보 관계자들이 대거 오사카에 집결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전했다.

- 왜 위조여권을 썼나

김정남 정도의 거물이라면 정식 절차를 통해 일본 당국에 신청하면 손쉽게 입국 허가를 받아낼 수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남이 여행중 일본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위조여권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분이 노출되면 공안당국의 감시가 따라붙고 언론의 주목도 피할 수 없다. 자유롭게 행동하기 위해 가명과 위조여권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 하필 도미니카 여권인가

중남미 국가들은 일본과 비자면제 협정을 맺고 있어 무비자 단기체류가 가능하다.

특히 도미니카 공화국은 국적취득이 쉽고 활동도 자유로워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로비스트들도 이 나라 국적을 활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도미나카공화국은 여권 관리가 느슨해 밀입국자들이 위조여권 대상국으로 자주 이용한다.

이 때문에 도미니카 여권을 위조 대상으로 선택했던 것으로 일본 당국은 보고 있다.

그러나 김정남은 얼굴이 중남미 사람과 다르고, 도미니카 공용어인 스페인어를 못하는 등의 모순점을 노출하고 말았다. 일본 내에서도 도미니카 위조여권이 적발된 예는 대단히 드물다.

왜 하필 도미니카 여권인지에 대해 일본 당국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지지(시사)통신은 전했다

- 왜 한국 출생이라고 표기했나

위조여권의 출생지란엔 ‘KOREA’라고 적혀 있었다. 얼굴이 중남미형과 다른 점을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로 분석할 수 있다. 또 생년월일(71년 5월 10일)을 실제대로 기재한 것도 의문이나, 그만큼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는 얘기도 된다.

- 왜 경호원이 동반 안했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라면 당연히 신변보호를 위한 경호원이 따라붙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여자·아이만 대동한 것은 “일본을 단순한 경유지로 삼아 가벼운 마음으로 며칠 머물다 갈 생각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산케이신문이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보도했다.

김정남은 평소에도 중국 베이징에는 경호원 없이 자주 출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그가 일본 입국에 성공했을 경우 재일본 조총련측이 일본 국내의 경호·안내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 과거에도 자주 일본에 왔다는데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김정남은 지난 95년에도 위조여권을 사용해 극비로 일본을 방문한 일이 있다.

당시 입국심사 과정에선 여권 위조를 발견하지 못했으나 일본 내 북한측 관계자들이 공항에 나와 젊은 나이의 그를 정중히 영접하는 것을 보고 일본 공안당국이 주목, 미행했었다고 한다.

당시 김정남은 도쿄의 일류 호텔에 투숙, 1주일을 머물렀으며 북한측 관계자와 함께 디즈니랜드 등 도쿄 주변을 관광했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이번 입국 때 사용한 위조여권엔 작년 2차례에 걸쳐 일본에 왔던 기록이 남아있었다. 요미우리는 서방측 정보기관을 인용해 “이번에 그가 일본에 입국하기 직전 유럽에 있는 가족도 일본에 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전했다.

-왜 이번엔 체포됐나
일본 당국이 과거 수차례 입국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번엔 체포한 이유가 최대의 의문거리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의 한 소식통은 “과거엔 입국심사에서 여권 위조를 적발하지 못했고 김정남이라는 확신도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이번엔 일본이 사전에 그의 입국 정보를 입수, 요원이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체포했다. 지지통신은 “일본에 정보를 제공해준 것은 미국 CIA(중앙정보국)”라고 보도했다.

일본으로선 김정남을 체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일부에선 부시 정권 출범 이후 달라진 미국의 대북한 정책과 이번 사건을 연결짓기도 한다.

대북한 강경론으로 돌아선 미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주었고, 일본은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행동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동경=박정훈특파원 j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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