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불법 입국한 김정남 처리 과정에서 이중적인 자세를 동시에 보여줬다.

사건이 알려진 3일 저녁부터 일본 정부가 보인 공식적인 태도는 철저히 북한의 체면을 고려해주는 쪽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대부분 사안에 직선적으로 답변하는 성격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모든 보고를 받은 뒤에도 “아직 확인할 수 없다.

상황을 봐가며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대변인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은 김정남이 추방된 4일에도 “김정남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위조 여권으로 들어온 것은 확실하다. 법에 따라 처리했다”고 신분을 끝까지 숨겨줬다.

외무성 관계자는 “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피하고 싶다. (국교 재개)교섭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룬 일본 정부의 속내를 설명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일본은 이런 문제가 커지는 것을 전통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물밑에서 조용히 처리하는 일본식 그대로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100% 북한 체면을 살려주고 조용히 처리한 것만은 아니다. 외교 당국은 그렇게 하고 싶었을지 모르나 법무·공안 당국 등 대 북한 강경파들은 이 같은 처리 방식에 불만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정보 관계자는 “언론에 보도된 것 자체가 일본 정부 일각의 ‘흘리기’일 가능성이 많다”고 봤다. ‘비밀리에 속결 처리한다’는 방침이 3일 오후 굳어지자 이들이 반발, 언론에 공개했다는 분석이다.

4일 나리타 공항에서 이들 일행의 모습을 언론에 완전 공개한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미 알려진 상황에서 정부가 신원도 공개하지 않은 채 내보내는 것은 굴욕적일 수 있으니, ‘사실상의 공개’라는 방법으로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납북자 가족 등 국내 강경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으로서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자세만을 보일 수가 없어 이 같은 이중 플레이를 했다고 정보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동경=권대열특파원 dy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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