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2일 전화 통화 내용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대북(대북) 정책 및 미국의 MD(미사일 방어) 추진 계획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한·미간 ‘갈등·조정 국면’에 대해 양국 정상들이 정리에 들어간 것임을 암시한다.

통화는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MD 구축 계획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이뤄졌다. MD 추진 계획과 민감한 연관성이 있는 영국·독일·프랑스 정상 및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에 이어 김 대통령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해’를 구한 것이다. 이는 2월말 한·러 정상회담에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의 유지’에 합의한 것이 미국의 NMD 추진에 대한 제동으로 비치는 바람에 3월초 워싱턴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이 ‘차가운 대좌(대좌)’로 이뤄졌던 상황에 비춰볼 때, 한·미 정상이 이 문제를 둘러싼 앙금을 씻어내는 단계로 나가고 있음을 뜻한다.

김 대통령은 통화에서 “부시 대통령이 새로운 국제안보 위협에 대응수단을 강구해 나가는 데 있어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는 데 이해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또 “이 과정에서 동맹국 및 다른 이해 당사자들과 긴밀하게 협의하는 것을 평가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의 증진에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정부의 고위 외교당국자는 이에 대해 “김 대통령의 언급은 미국의 MD 추진 계획에 ‘지지’를 표명한 것이 아니라, 동맹국들과 협의해 나가는 부시 대통령의 진지한 자세를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이 안보환경의 변화에 대해 동맹국들과의 협의를 통해 대처하려는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을 ‘이해’한다는 것이어서, MD 자체에 대한 지지나 반대가 아니면서도 부시에게 호의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말하자면 ‘호의적 중립’ 입장을 밝힌 셈이다.

그러나 MD에 대한 우리 정부의 최종 입장은 미국의 계획이 점차 구체화돼 나가는 과정에서 시간을 두고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두 정상간 통화의 또 다른 주제는 대북 문제였다. 김 대통령은 특히 미국이 대북정책 검토가 끝나는 대로 미·북간 대화를 재개해줄 것을 공식으로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과 긴밀한 협의 아래 대북정책에 대한 검토를 최대한 빨리 끝낼 것”이라고 화답했다. 미국측의 이같은 입장은 여러 외교 경로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같은 부시의 답변 내용과 관련, “1~2개월 이내에 미국의 대북정책이 확정되는 것을 의미함은 물론, 그것이 대북 포용정책을 기반으로 할 것임을 연상케 하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가 담겨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남북한과 미국간 3각 구도 속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쪽을 향해 가는 출발신호가 될 수 있으리라는 해석이었다.

김 대통령은 이날 통화 서두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덕담을 보냈다. “취임 100일 동안의 업적과 지지율 상승에 대해 축하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10월 방한 때 서울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한·미 정상간 전화 조율에 이어 내주 중에는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과 제임스 켈리 동아태차관보가 MD 계획 설명과 대북정책 조율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다.

/ 김민배기자 baiba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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