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세대 탈북자들과 국내 대학생들의 연합 모임인 '백두한라회' 회원들이 지난 20일 동국대에서 열린 체육대회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작년 5월 남한에 정착한 ‘젊은 탈북자’ 박철진(22)씨는 매일 ‘서울말 연습’에 한 시간씩 투자하고 있다. 서태지의 노래를 좋아하고 기분전환으로 머리를 노랗게 부분염색한 그는 “나는 말만 안하면 영락없는 남한 신세대”라고 했다.

박씨의 꿈은 ‘제2의 정주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빠른 시간 안에 남한사람처럼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97년 북한을 탈출한 박씨는 유일한 피붙이인 북의 남동생이 생각나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중고 자가용을 몰고 경부고속도로를 무작정 달린다. 유지비가 만만치 않지만 “북한 젊은이들에게 자동차는 꿈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박씨의 표정에는 탈북을 선택한 자신의 결정에 대한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박씨는 “내가 설계(계획)한 대로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에 남한에 왔다”고 말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급증한 국내정착 탈북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20~30대의 젊은이들이다. 20~30대 초반의 이들 ‘신세대 탈북자’는 훨씬 도전적이고 남한사회에의 적응도 빠른 편이다.

올 여름에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을 앞둔 김형덕(28)씨는 최근 탈북자로는 처음으로 국회의원 인턴사무관이 됐다. 94년 서울에 온 김씨는 남한 사회에 실망, 한때 밀항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97년 연세대에 특례입학한 뒤에는 철공소, 주유소, 막노동판, 이벤트회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미래를 준비해 왔다. 그는 “남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려 노력했고 그들이 가진 장점을 배우면서 내 자신을 바꿔나갔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동국대에서는 32명의 탈북자 대학생과 남한 대학생 60여명이 참여한 친목·봉사단체 ‘백두한라회’가 출범했다. 봉사단장을 맡은 서영석(26·고대 경영학부1)씨는 99년 어머니와 누나 2명을 데리고 남한에 왔다. 북에서 초등학교 체육교사로 일했던 그는 “음성 꽃동네, 서울 변두리 달동네 등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봤다”며 “그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벌이겠다”고 했다. 서씨는 요즘 북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컴퓨터와 영어 공부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신세대 중에도 자기 분야를 찾지 못하거나, 남쪽의 편견을 의식해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남한 정착 2년째인 경기도 안산의 이모(23)씨는 요즘 밤마다 네트워크 게임에 빠져 있다. 한 달 전쯤 어렵사리 구한 공장일을 ‘기름 알레르기’ 때문에 그만둔 뒤부터는 밤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4시까지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것이다. 이씨는 “남한 친구들도 여러 명 생겼지만 결국에는 왠지 모를 벽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대학에 재학 중인 20대 탈북자는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느냐’ ‘연애는 어떻게 하느냐’며 거의 지엽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며 “처음에는 학교 친구들이 많았는데 호기심이 충족됐는지 갑자기 하나둘 멀어졌다”고 했다. 그는 “원래 친구가 없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며 씁쓸해했다.

/최재혁기자 jhchoi@chosun.com
/김기홍기자 darma9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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