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이산가족 300명씩의 서신교환을 끝으로 한달여 간 중단된 남북접촉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남북대화의 일시적 소강 국면일까, 아니면 북한의 ‘과거 회귀’ 조짐일까.

적어도 외형적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면 당국간 대화를 기피하고 민간교류만 일부 허용했던 과거 북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3월 13일의 제5차 장관급회담과 4월 3일의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은 일방적으로 북한에 의해 무기연기 또는 무산됐다. 반면 북한은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의 사망 때는 서울에 조문단을 파견했다.

또 최근들어 북한은 미국의 부시 행정부에 대해 과거에 못지않은 비난 공세를 퍼붓고 있고, 6·15 공동선언 이후 자제해오던 주한미군 철수도 이제는 분명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일련의 북한 움직임을 남북관계의 ‘암운’으로 분석하고 있다.

송영대 전 통일원차관은 “앞으로의 남북대화는 북측 입장에서는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대미 접근의 ‘장식품’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방문을 예정대로 마친 뒤 뭔가 새로운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봤는데, 러시아 방문까지 연기돼 생각보다 남북대화 재개가 더 늦어질 것 같다”고 ‘장기적 소강’을 예상했다.

그러나 대화 중단이 한달여에 불과하고, 북한이 지난 19일 비료 지원을 공식 요청한 것 등을 고려할 때 그리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는 견해가 아직은 더 많다.

정부 당국자들도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전략적 선전전’(임동원 통일부장관) 정도로 해석하면서 5월 중순쯤부터는 대화가 재개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

북한이 명실상부하게 과거 회귀를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남쪽으로부터 얻어갈 것이 많으니까”(정세현 전 통일부차관)로 모아진다. 정 전 차관은 “북한의 입장이 지금 어렵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정책과 별개로 시혜성 대화를 통해 남한의 지원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북한팀장도 “북한은 올해 남한이 국가예산에서 5000억 원을 추가 출연한 남북협력기금으로 무엇이든지 지원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며 “대화의 수준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한도내에서 남한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송영대 전 차관은 최근 외국 정보기관의 정보를 인용, 남북접촉의 중단이 ‘북한 내부의 긴장상태’ 때문이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그는 “북한내부에 상당한 긴장상태가 존재하고, 이것이 언제, 어느 때 폭발할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왔다”며 “대미관계와 상관없이 대내적 요인 때문에 남북관계의 진전이 불투명한 점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정호기자 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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