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짧고 확실하게 쌈박한 춤.” 일본에서 활동하는 우리 무용가 백향주(26)의 98년 첫 한국 공연을 본 한 평론가의 말이다. 월북 무용가 최승희의 부활로 불리는 백향주가 또 한번 한국 무대에 선다. ‘백향주 무용-신무(신무ㆍ한전 아츠풀 센터ㆍ22~23일)’다.

‘‘우조춤’ ‘초립동’ ‘무녀춤’ ‘관음보살무’ ‘고구려 무희’ 등 최승희 춤도 추지만 이번엔 ‘남쪽 춤’도 한편 춘다. 한국 무용에 뿌리를 둔 현대무용 ‘신무’. 전 국립무용단장 국수호가 안무했다. 17일 밤 도쿄에 있는 백향주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남쪽 춤 배우느라고 그간 힘들었다”고 말머리를 꺼냈다.

“북쪽 춤은 밖으로 밖으로 추기 때문에 시원한 볼거리가 많지요. 반면 남쪽 춤은 안으로 안으로 향합니다. 안으로 삭이는 한국 춤을 추면서 조국의 분단도 걱정해 보고 세계 평화도 기원해 보았어요.”

수화기를 통해 대한해협을 건너온 백향주의 목소리는 북한 방언 톤이 살짝 밴 억양, 그러나 유창한 말솜씨였다.

일본에서 태어난 백향주는 2살 때부터 북한 금강산 가극단 출신 아버지로부터 무용을 배웠다. 클래식 발레를 시작으로 평양을 드나들며, 최승희의 양아들이자 국립만수대예술단 무용창작가인 김해춘으로부터 최승희 춤을 전수 받았다. 16살 때는 중국 국립중앙민족대 무용학부로 유학 떠나 65가지 소수민족 춤을 익혔다.


“중국 소수민족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생각했어요. 어느 땅이나 소수민족의 삶이란 우리 재일동포들 처럼 다 설움과 차별을 당연한 듯 견뎌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중국내 소수 민족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독자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태도 앞에선 큰 감명까지 받았어요.”

백향주는 98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난생 처음 눈에 들어온 고국 거리 풍경을 잊지 못한다. 서울 거리를 가득 메운 한글 간판을 앞에서 그는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조총련계 학교에 다니면서 치마 저고리를 입었기에 늘 일본인들 앞에 한국인임을 공개하고 다녔고, 그랬기에 어려움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힘들었던 세월이 있었기에 갈등을 초월해 춤을 추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춤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요.”

백향주의 춤은 한국 전통 춤과는 확실히 다르다. 활력 있고 빠르고 과감하다. 동서양의 다양한 춤으로 기본을 탄탄히 다진 백향주는 화려한 기량과 함께 표현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무용 평론가 진옥섭씨는 “백향주의 춤에서는 한국 무용에서는 보기 힘든 과감한 춤의 각도가 돋보인다”면서 “그는 무용수들이 특정 대학, 특정 스승에 매여있는 한국 무용계에서 나올 수 없는 춤꾼”이라고 말했다.

백향주는 “앞으로 전통의 정신은 이어가되, 표현은 내 방식대로 하겠다”고 말한다. “남쪽 춤도 아닌, 북쪽 춤도 아닌 내 춤을 추려 합니다. 빠르고 신나는 지금 내 춤은 내게 어울립니다. 사십, 오십 되면 어차피 출 수 없는 춤이니까요. 10년 후에는 지금처럼 내가 무대에서 빠르게 돌 수 없지 않겠어요.”

“나는 나고 나는 혼자다”라고 말하는 백향주는 “고독은 독무가의 숙명”이라고도 말했다. “서른이 되면 내 춤을 만들겠어요. 무용가에게 저축이란 없습니다. 대신 끊임없이 정신적인 부유함을 찾으려 합니다. 멈추는 무용가는 죽어버리는 거니까요.”
서울 공연(22~23일)에 이어 대구(25일), 부산(30일), 울산(5월3일), 청주(5월4일) 무대도 갖는다. (02)6223-5830
/정재연기자 whaud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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