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철수 안하면 남북군축도 못한다』는 16일자 노동신문의 보도는 여러차례에 걸친 김대중 대통령의 「김정일 위원장의 미군존재 인정」 발언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작년 정상회담 이후 김 대통령은 기회있을 때마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 중 하나로 북한의 「주한미군 인정」을 꼽았다.

올해 신년 연두회견에서는 물론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북한이 50여년간 일관되게 주장해온 세 가지 중 하나가 주한미군철수였는데 북한은 지금,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인정하고 있고 통일 후에도 그것을 인정한다고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해 6월 북한에 가서 북한이 반세기 동안 주장하던 주한미군철수, 연방제, 보안법 철폐 등 세가지 문제에 양보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김 대통령의 이런 언급과는 정반대로 정상회담 후 간헐적으로 주한미군 문제를 제기해 오다가 이번엔 당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해 미군철수를 남북군축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며, 남북한 간의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위해서는 「외세문제」가 선결돼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것은 남북합의서 제1항의 「자주」 문제에 주한미군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정부 설명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북한과의 어떤 문제도 공식선언이 안된 상태에서 주관적인 해석을 공식적인 합의인양 공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김 대통령이 「대내용」을 위해 사실을 과장했을지도 모른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마저 있다.

당국자들은 북한이 주한미군 문제에 갑자기 강경하게 나오는 이유로 최근의 불편한 미·북관계와 연관시키려고 할지도 모른다.

남북 정상 간에 그같은 「합의」를 하고도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 태도를 바꿨을 것이란 해석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더 크다.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는 「합의」나 「양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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