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璂元
두리하나 선교회 대표

두리하나 사무실에는 날마다 여러 통의 전화와 편지가 날아온다. “도와 달라, 살려 달라, 어떻게 하면 한국에 갈 수 있느냐?” 모두 같은 내용들이다. 그들은 중국에 체류 중인 이른바 ‘탈북자’들이다. 읽다 보면 메어 오는 가슴을 주체할 길이 없다.

그제 받은 편지에도 30대 여성의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1997년, 굶어죽지 않으려고 한여름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온 27세의 그녀에게 다가온 현실은 중국 남자와 조선족 노총각 등 세 남자에게 팔려 가며 유린당한 7년의 세월뿐이었다.

최근엔 식모살이 등 갖은 궂은 일을 하며 매달 700원(약 10만원) 정도 벌어서 1년간 꼬박 모은 돈을 중국 공안에게 붙잡혀 불법체류자 벌금으로 몽땅 빼앗겼다 한다.

다시 거지 신세가 되고 공안만 보면 심장이 멎어버리는 불안과 공포 속에 지내던 중, 한국인 식당에서 한국 위성방송을 통해 ‘한국 정부가 탈북자를 받아 준다’는 내용을 보았다며, ‘조국 한국 땅에 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달라’는 요지였다.

이런 사연을 듣고 나면 우리는 그들을 향한 조건 없는 도움의 행보를 내디딜 수밖에 없다. 우리 헌법은 분명히 그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국내에서 이뤄지는 불우이웃 돕기와 다를 바 없이 그들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며칠 전 어느 세미나에서 통일부 관계자가 정부 시책을 홍보하며 “탈북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여, 본인이 원하면 국가가 보호하고 전원 국내에 입국시키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고 역설했다. 필자는 이 같은 정부의 논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최근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려다 중국 공안에게 붙잡혀 결국 북송되었던 어느 할머니가 모진 고문에 의해 두 다리를 못 쓸 정도로 망가진 상태에서 재탈북하여 왔다.

다친 다리 때문에 혼자 영사관 담을 뛰어넘어 들어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외교부에 특별히 보호 요청을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는 것이 바로 그저께의 일이다.

또 얼마 전에는 베트남으로 탈출한 사람들도 우리 영사관에 보호 요청을 했으나 거절당하고 베트남 경찰에 붙잡혀 중국으로 추방된 후 북송되고 말았다.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이 이러한데 어째서 전원 받아들인다는 말인가? 되물었다. “해당국의 법에 따라, 대한민국 영사관 내에 진입한 사람에 한해 보호한다”고 답변했다.

이는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자력으로 헤엄쳐서 물가로 나오면 살려주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우롱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탈북자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타국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핍박받는 저들을 좀더 적극적으로 면담하고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과연 탈북자를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인정하는가?

생존의 위협 속에 있는 그들을 향해 우리 주변에 있는 불우이웃과 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우리 민족의 미래에 공헌할 지대한 가치를 알고 있는가?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은 지금 북한 내 가족과 친지들에게 여러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남한 생활을 소상히 전달하며 경제적 도움도 주고 있다.

이들로 인해 북한 주민들은 남한에 대한 생각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한다. 탈북자들은 이와 같은 역할 속에서 장차 남북통일 시대에 양쪽 진영의 완충지대 역할을 크게 담당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미래 우리 민족의 귀중한 역사적 일꾼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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