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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대장정]목숨 건 탈북 아직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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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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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거쳐 미얀마-몽골로 '참혹한 도망길' 5000km…제3국서 감옥행-인신매매 당하기도

●한국으로의 대탈출

탈북 귀순자 이동섭(31)씨는 최근 강원도 속초에서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는 지난해 12월 거주지가 강원도 속초로 배정된 것에 불만을 품고 하나원의 방송기자재를 파괴했다가 경찰에 연행돼 187만원의 변상금을 내고 석방됐다. 함경남도 단천 광산촌이 고향인 그가 한국으로 오기까지는 4년여 세월과 미얀마 정글지대를 돌파하여 죽음의 대탈출을 방불케 하는 5000km의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단천의 광업전문학교를 1년간 다니다 중퇴하고 광산에 배치돼 8년간 일하다 탈북을 결심했다. 그는 단순한 식량난민이 아니란 점을 강조했다. 자신의 탈북은 굶주림에 못이겨 식량을 구할 목적이 아니라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단천은 철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인데, 기차가 도착할 때마다 철도 순찰대는 여성들을 함부로 검문검색하거나 심지어 강간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식량난마저 닥치면서 북한에서는 더 이상 살 길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6년 8월 아버지가 사망한 지 한 달 후 그는 형과 함께 강을 건너와 식당 종업원, 공사판 잡역부, 산판 노동자, 사우나 복무원 등 닥치는대로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1999년 11월 23일 한국인 선교사 이용화(가명) 씨의 도움으로 한국행의 꿈을 안고 남자 8명, 여자 1명 등 9명의 탈북자와 함께 중국의 선양(심양)을 출발했다.

이씨는 쿤밍(곤명)까지 기차로 이동한 다음 버스로 중국ㆍ미얀마 국경까지 갔다. 수중에 돈이라곤 선교사에게 받은 중국 돈 300위안이 전부였다. 이씨를 비롯한 9명의 탈북자들은 현지 안내인도 없이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야음을 틈타 미얀마 국경을 넘었다. 그들은 이틀간 정글지대를 헤매다 미얀마 국경수비대에 체포돼 중국으로 강제추방됐다. 그러나 다음날 재차 월경하여 정글지대를 헤매던 중 또 다시 국경수비대에 발각됐다. 죽기 살기로 도주하자 수비대는 경고사격을 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고, 이 와중에 강을 건너던 탈북자 강상훈씨가 물에 빠져 죽는 참변을 겪기도 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를 겨우 넘고 보니 미얀마의 국경도시인 쩬뚱시 감옥이었다. 그들은 불법입국죄로 재판에 불려나가 1년형을 선고받았다. 수감생활 중 이씨는 피부병으로 큰 고생을 했다. 6개월째 되던 날 한국 외교관이 감옥에 찾아와 “곧 석방될 예정이며,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갈 예정이니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씨가 양곤과 태국 방콕을 거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3개월 후였다. 고향을 떠난지 4년, 만리타향 중국 선양을 떠난지 9개월만의 귀순이었다.

이씨가 하나원에서 국내 정착교육을 받을 때 보니 귀순자들이 자신처럼 미얀마를 거쳐 온 사례는 지금까지 30건 정도. 동료들의 한국행 여로는 러시아, 몽골, 태국, 심지어 중국에서 밀항선이나 위조한 한국 여권으로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 등 끔찍하고 참혹하고 드라마틱하여 한 편의 소설을 방불케 했다. 미얀마를 통해 한국에 온 사람들은 이씨의 사례처럼 현지에서 불법입국으로 재판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형기가 거의 끝날 때쯤 미얀마 정부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과 협상하여 난민 자격을 부여하여 한국에로 오는 것이다.

이동섭씨와 함께 하나원에서 국내 정착교육을 받은 백향목(31ㆍ가명)씨는 북에 남은 남편과 가족을 그리며 간호학 공부와 신학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기회가 나는대로 남편과 가족을 한국에 데려올 궁리를 하고 있으며, 지금도 비밀 통로를 통해 돈을 보내고 있다. 1998년 어머니와 함께 압록강을 건넌 그녀는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범들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인신매매범들이 백씨 일행을 덥치려 하자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반대방향으로 도망치면서 인신매매범들을 다른 쪽으로 유인했다. 백씨는 그 틈을 타서 간신히 마수에서 벗어났다. 백씨 대신 잡혀간 어머니는 너무 늙어 ‘상품가치’가 없기 때문인지 무사히 풀려나 백씨와 합류했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상하이(상해)에서 은신생활을 하던 백씨가 한국행을 결심하고 상해영사관을 찾아갔다. 한국 외교관들은 500위안의 돈과 중국ㆍ미얀마 국경지역 지도 한 장을 주더니 어떤 선교사를 소개했다. 백씨는 그 선교사가 운영하는 교회에서 탈북자 두 명과 합류했다. 지난해 5월 쿤밍을 거쳐 버스로 국경지역으로 이동한 일행은 야음을 틈타 미얀마 국경을 넘었다. 중국ㆍ미얀마 국경지역에도 탈북 여성을 노리는 인신매매범들이 득실거리고 있어 위험지대를 겨우 빠져나왔다.

그녀는 미얀마 국경과 초소 25개를 통과하여 태국 국경을 넘는 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상황을 수차 경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백씨는 대낮에 총을 들고 지키는 국경수비대원 옆을 빠져나가도 들키지 않는 등 신의 섭리를 체험했다고 한다. 무사히 태국 영내로 들어오자 태국 국경수비대는 미얀마와 달리 대단히 협조적이었다. 백씨는 “한국인인데 증명서를 분실했다”고 하소연하자 태국 국경수비대 책임자는 현지어로 “한국 사람이니 방콕의 한국 대사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한다”는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백씨가 방콕의 한국대사관을 찾아가자 한국 외교관은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교사에게 보호를 요청했고, 그들의 도움으로 요양생활을 하다 지난해 9월 22일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백씨처럼 중국에서 미얀마 영내를 거쳐 태국까지 탈출은 정글 밀림지대를 돌파해야 하는 등 그 행로가 대단히 위험하고 험난한 반면 이동철씨의 사례처럼 감옥 생활을 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이 루트로 한국에 온 사례는 20여 건 정도.

●선교사들이 탈출 루트 개척

한국계 미국인인 더글러스 신(한국명 신동철) 목사는 몇 년 전부터 ‘엑소더스 21’이란 단체 운영에 간여하고 있다. 그는 한국 선교조직과의 연계를 통해 탈북자들을 몽골을 비롯해 중국과 국경을 접한 제3국으로 이동시키는 루트 개발에 힘써 왔다. 중국은 넓고, 그 중국과 국경을 이룬 나라들은 더 넓으므로 이를 통제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자원봉사 인권 구조단체인 ‘피난처’를 운영하는 이 모씨와 D선교회의 선교사들은 중국~미얀마~태국 루트, 중국~베트남~캄보디아 루트, 중국~몽골 루트 등을 일일이 현지답사한 후 위험에 처한 탈북자들을 탈출시키는 통로로 이용해 왔다.

‘피난처’의 운영자 이 모씨는 중ㆍ몽골 루트 개척 당시 “국경의 철조망이 전기 철조망인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철조망 아래로 기어나갈 수 있는지 정밀답사한 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D선교회는 험한 정글지역을 뚫고 베트남 루트를 개척한 후 베트남ㆍ중국 정부간에 벌어진 탈북자 추방사건(이른바 핑퐁 난민사건)의 당사자들을 구출해 오기도 했다. 이들 선교조직의 도움으로 작년 4월부터 올 3월까지 중국~몽골 루트를 거쳐 한국으로 귀순해 온 탈 북자는 80여명에 이른다.

D선교회 관계자는 “탈북자들을 제3국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보낼 경우 베트남ㆍ미얀마ㆍ태국 루트는 접근이 어려운 반면 현지 정부와의 협상이 쉽고, 몽골, 러시아 루트는 접근이 쉬운 반면 현지 정부와의 협상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의 소식통은 “그 동안 몽골 정부는 탈북자의 한국행에 협조적이었으며 탈북자 정착을 위한 농토제공, 혹은 난민촌 건설시 토지 제공 의사를 밝혔으나 우리 정부가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국제 선교단체들이 몽골 지역에 탈북자 난민촌 건설을 위한 현지답사까지 이미 끝냈다고 한다. 몽골 지역은 겨울철 혹한 때문에 텐트 형식의 거주는 불가능하므로 구 소련군의 몽골 주둔지 중 난방시설이나 배관이 쓸 만한 곳을 물색해 놓은 상황이라고 한다.

현지 활동가의 보고에 의하면 최근에는 중국에서 몽골로의 탈북이 선호되고 있지만 조만간 몽골 루트도 닫힐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탈북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몽골 정부가 난색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활동가들은 중국과 국경을 접한 제3국의 지역 군벌이나 지방정부, 혹은 중앙 정부와 패키지 딜 혹은 포괄적 상호주의에 의해 우리 정부가 개발원조 프로젝트를 제공하고 탈북자의 중·장기 체류를 묵인해 주는 협상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탈북자 현지정착 사례 늘고 있다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선교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은 지금까지는 탈북자를 한국으로 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제3국으로 이동시켰으나 최근에는 한국으로 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 짐이 되고 있는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먼저 한국에 간 귀순자들로부터 한국 정착이 쉽지 않다는 소식들을 접하면서 한국행의 꿈을 포기하고 현지의 안전지대에 정착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한 선교단체는 2년 전 12개 탈북 가정을 선정하여 중국 공민증을 비합법적으로 취득시킨 후 이농현상으로 농가와 농토가 비어 있는 흑룡강성의 시골 마을에 정착시켰다. 이들은 현재까지 농사를 지어가며 잘 살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M선교단체는 탈북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흑룡강성에서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목장 주변에는 탈북자들이 긴급피난할 수 있는 지하대피소는 물론, 비밀 성경공부방 등을 만들어 놓고 있다. 다른 단체는 기술이 없는 탈북자들이 일할 수 있는 반찬공장, 국수공장 등을 차려 탈북자들을 현지에 취업시키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탈북자를 돕다가 지난해 1월 16일 중국 옌지(연길)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된 김동식 목사는 탈북자들의 현지 정착을 위해 김치공장을 운영하다 변을 당했다.

법륜 스님은 “탈북자들이 중국에 정착한지 이미 2~4년이 지나 길거리에서 유랑하는 단계에서 살 길을 찾아 정착 단계에 들어섰고, 어느 정도 중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현지 정착이 예전처럼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현지 정착이 자리를 잡아가는 이면에는 탈북자를 묵인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입장도 큰 작용을 하고 있다. 중국은 개방정책 수행 과정에서 임해지역 우선정책을 추진한 결과 동북3성 지역에서 광범위한 이농, 인구 감소 현상에 직면해 있다. 심각한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와 여성들의 도시 진출로 농촌 총각들이 장가를 가지 못하는 현실을 30만 탈북자들이 해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앙 정부에서 탈북자 색출 송환명령이 떨어지면 지방에선 형식적 단속이 벌어지며, 반드시 숫자를 채워 보고해야 할 경우에만 머릿수를 채워 송환하는 실정이다.

중국 흑룡강성의 하얼빈 부근 소도시에서 탈북자들을 돕는 조선족 선교사의 증언에 의하면 이 소도시 근처에 흩어져 사는 탈북자의 수는 한 시간 내에 연락이 닿아 모일 수 있는 탈북자가 100여명, 3시간 내에 모일 수 있는 탈북자가 250여명, 자신이 속한 교회에 적을 두고 있는 탈북자가 15명, 이 지역으로 인신매매되어 한족에게 시집을 온 여성이 다섯명이라고 소개했다. 중ㆍ북 국경지역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단속도 느슨하고 공안에 붙잡혀도 송환 과정에서 도망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가급적 북한과 멀리 떨어진 지역, 이농 현상으로 인구가 격감하고 있는 무단장(목단강) 이북 지역으로 북상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최근 들어 중ㆍ북 국경지역이나 옌지 등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탈북자들을 찾아보기가 예전처럼 쉽지가 않다.

●탈북자 여성 90%가 인신매매 경험

하나원에서 국내 정착교육을 받고 있는 18세 탈북 소녀 A양은 16세 때 탈북했다가 국경 지역에서 인신매매범에게 붙잡혀 한족 남자와 강제로 결혼했다. 17세 때 아이를 하나 낳고 탈출한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의 귀순에 성공했다. 이 소녀의 인신매매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현재 하나원 출신 귀순자들 중 6명이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해 한족 남자와 살고 있는 자기 부인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계획을 추진할 정도로 탈북 여성의 인신매매 사례는 광범위하다. 대다수 기혼 탈북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부인을 한족이나 조선족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는 등 ‘가족 해체’ 현상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사단법인 ‘좋은 벗들’의 정안숙 사무국장은 “탈북자 중 여성이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 중 90%는 인신매매를 당하고 있다. 대다수 탈북 여성들은 두세 차례 인신매매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한 선교단체는 7회나 인신매매되었다가 탈출한 35세 탈북 여성을 은신처에 보호 중이다.

탈북자를 돕는 민간인과 선교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전부터 심각한 문제가 됐던 탈북 여성의 인신매매 사례가 기업화ㆍ조직 범죄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 과거에는 ‘탈북 여성 사냥’이 국경 지역에서 소극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최근에는 국경 지역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조선족 인신매매 조직들은 탈북자들이 자주 넘어오는 압록강과 두만강변에 숨어 있다가 밤에 강을 건너 탈출하는 여성을 붙잡아다 장가 못간 농촌 지역의 한족이나 조선족, 윤락업소나 술집에 1000~5000위안을 받고 팔아 넘긴다. 과거에는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거리에서 탈북 여성들을 무차별로 잡아다 팔았으나 최근에는 조직원들이 북한까지 들어가 북한 여성을 돈 주고 사서 탈북시킨 후 상품화하는 경향마저 발견되고 있다. 중국 정부와 북한 당국이 인신매매범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펼치는 바람에 지하화하여 색출 및 단속이 쉽지 않은 것이 큰 문제다. 특히 북한은 인신매매범을 잡으면 즉각 총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신매매 당한 대부분의 탈북 여성들은 처녀의 경우 마음씨 좋은 남자를 만나면 아이를 낳고 살지만 대부분은 탈출했다가 또다시 인신매매 조직에 걸려 되팔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기자가 지난해 5월 중국 흑룡강성 근처의 소도시에서 만난 탈북 여성 박미옥(가명ㆍ24)씨는 3000위안에 팔려 한족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박씨는 탈북 당시엔 식량난으로 제대로 먹지 못해 대단히 여위었으나 중국에 와서 제법 살이 붙었다고 한다. 그녀는 탈북 과정에서 조선족에게 붙잡혀 한족에게 팔렸다. 그러나 갖은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했다가 다른 인신매매 조직에게 붙잡혀 흑룡강성의 소도시로 팔려 갔다. 박씨의 설명에 의하면 탈북 여성을 사서 장가 든 사람들은 여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밖에서 문을 잠가 가두기도 하며, 심지어 수갑을 채워 기둥에 묶어 두기도 한다는 것. 그녀의 새 남편은 삼륜차 운전기사인데 박씨는 “남편이 돈을 잘 벌지는 못해 가난하지만 내 처지를 잘 이해해 주고 사랑해주는 편”이라면서 “첫번째 팔려갔을 때 임신을 했는데 아이를 지우다 몸을 망쳐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선교사업을 하는 B선교사가 인신매매범들이 탈북 여성을 사냥하여 잡아 가두고 매매를 하는 국경 지역의 한 가옥을 찾아간 적이 있다. 당시 그 집에는 9명의 탈북 여성이 감금돼 팔려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인 조선족 노인은 110명의 탈북 여성을 팔아넘겼다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각종 흉기와 가스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주인의 설명에 의하면 20~40대 여성이 집중적인 사냥의 대상이 되며, 얼굴이 곱고 건강할수록 비싼 값에 팔린다고 했다.

탈북 여성의 인신매매 대열에는 국내에 정착한 귀순자들도 한몫을 하고 있다. 얼마 전 귀순한 C씨(43)는 국내에서 결혼이 쉽지 않자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으로 밀입국 브로커를 통해 탈북 여성 D씨(28)를 한국으로 귀순시켰다. D씨는 한국으로 보내주겠다는 C씨의 말에 결혼을 약속했는데, 막상 한국에 오자 나이 차가 너무 많은 등 마음이 변해 결혼을 거절했다. 감정이 상한 C씨는 “그동안 너의 한국 귀순을 위해 투자한 돈을 변상하라”고 요구하는 등 말썽이 일었다. 이런 사례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면서 일부 귀순자들의 행동이 동료 탈북자 구출이라는 휴머니즘 차원이 아니라 인신매매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힘으로 탈북자를 귀순시키자

북한군 대위 출신인 김성민(탈북난민보호 유엔청원운동본부의 귀순자 자원봉사단장)씨는 귀순자들을 대상으로 100만원 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1인당 100만원씩 10명이 힘을 합치면 탈북자 한명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기 때문. 귀순자가 한국에 오면 가구당 3000만~4000만원 정도 정착금이 지급되는데, 이들이 또 100만원씩 모아 다른 탈북자를 귀순시키는 ‘연쇄 귀순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먼저 한국에 온 귀순자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으로 북한에 사람을 들여보내 가족을 탈북시켜 한국으로 데려오는 사례가 하나원 원생 중 30%를 넘는다. 덕분에 하나원 주변에는 ‘탈북자 데려오면 돈을 번다’는 소문이 나면서 밀항 브로커, 협잡꾼들이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는 탈북자들을 보호하는 조직, 거주지 등이 한국의 물주들과 연계되어 점차 기업화ㆍ조직화되고 있다. 과거처럼 한두 명이 탈북하여 정처없이 중국 대륙을 유랑 걸식하는 형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조선족이나 탈북자들이 돈을 받고 북한에 들어가 특정인을 탈북시키는 안내인 조직이 생겼는가 하면, 탈북자들을 세명 단위로 먹이고 재우는 데 한달에 800위안을 받는 비밀 숙박조직도 생겨났다.

탈북자들을 상대로 중국 현지에서의 직업 알선은 물론 한국 여권을 위조하여 베이징(북경)이나 다롄(대련), 선양(심양)공항에서 항공편으로 밀입국시키는 조직, 중국 항구에서 배를 이용해 한국으로 빼돌리는 밀항조직도 암약 중이다. 이들 조직은 한국 여권을 구해 항공편으로 한국으로 빼돌려 주는 데 1000만~1500만원, 밀항선은 500만원 정도를 요구한다.

지난해 5월 납북어부 이재근씨 일가 3명의 한국행 과정에서 정부측의 무성의로 귀환 일정이 지연됐을 때 기자는 이씨 일가의 비공식 귀환을 위해 베이징에서 조선족 밀입국 조직과 접촉한 적이 있다. 당시 밀입국 조직은 “돈만 있으면 한국 여권 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면서 즉석에서 전화를 걸어 일가족 세명 중 두 명의 한국 여권을 확보했다. 그들은 여권 1매에 700만원, 안전한 출국 및 항공기 탑승에 100만원 등 1인당 800만원을 요구하면서 “돈만 입금시키면 내일이라도 출국시켜 주겠다”고 장담했다.

지난 3월 중순에도 먼저 귀순한 탈북자 박 모씨가 중국에 머물던 어머니를 항공편으로 한국에 입국시켜 귀순했다. 이 사건도 현지에서 암약하는 여권 브로커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이제 탈북자들의 한국행은 정부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돈이 좌우하는 세상이 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위조나 변조가 손쉬운 한국 여권이 탈북자들에게는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탈북자 돕는 사람들 줄줄이 수난

중국과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체제의 안정과 사회 통제를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과 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 행렬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더글러스 신 목사는 “탈북자들은 김정일의 폐쇄정책과 주민에 대한 폭정에서 발생하는 주민봉기 압력을 분출시키기 위한 안전밸브”라고 진단했다. 북한이나 중국이나 원하기만 하면 북한 주민의 탈북사태를 봉쇄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체제의 안전을 위한 바람구멍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란 설명이다.

북한 노동당 작전부 소속 공작원 출신의 귀순자 차성근씨는 “북한이 연해주를 유랑하는 벌목공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현지의 한국인 선교사들을 납치할 계획을 세웠다”고 증언했다. 북한 통치자 입장에서 보면 탈북자들을 돕는 한국 종교단체와 선교사, 자원봉사자들은 눈엣가시다. 따라서 탈북자들이 급격히 늘면 현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에 대한 납치, 살해 등고강도 위협을 가해 적절한 통제를 가하고 있다. 북한은 안승운 목사에 이어 김동식 목사를 납치해 갔으며, 3월 초에는 옌지에서 한국인 선교사가 참혹하게 살해되어 토막난 시체로 발견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3월 8일 방미 당시 미국기업연구소(AEI)와 외교협회(CFR) 주최 오찬 간담회에서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문제 캠페인을 벌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빌 거츠 워싱턴 타임스 칼럼니스트의 질문에 “북한의 인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남북관계 개선, 전쟁억제,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대화가 초입인 상황에서 공개적인 문제제기는 적절치 않다”고 발언했다.

탈북자들은 한국으로 오기도 쉽지 않지만 현지 정착도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중국 유랑의 와중에 탈북자와, 그들을 돕는 한국인들이 북한 정권에 의해 납치 살해당하는 등 줄줄이 참변을 당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애오라지 햇볕정책의 성과만을 주문처럼 되새기고 있다. 헌법 정신에 의하면 탈북자는 물론, 현지에서 납치 살해당한 한국 선교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보호 임무에 소홀한 나라는 국가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인류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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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없는 대북지원'의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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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까지 지원식량…장마당엔 의약품도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조건없는 식량지원론'과 '분배의 투명성 확보없이는 지원 불가론'이 팽팽히 맞서 논란을 벌여왔다. 많은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일부 민간단체들은 식량과 생필품, 인도적 물품을 지원해 왔는데 사회 일각에선 “인민군대를 먹여 살리고 북한 주민을 탄압하는 특권층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지나 3~4년 동안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조건없는 지원을 펼친 결과 북한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식량 가격이 낮아진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과거엔 중국보다 서너 배 비쌌던 식량 가격이 최근에는 2분의 1 내지 3분이 1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예랑선교회측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지난해에 비해 경제사정이 한결 나아져 장마당에서 백미 1kg에 70원이던 것이 지금은 40~45원까지 인하됐다. 보통 노동자 한달 월급이 100원선이므로 노동자 한달 월급으로 쌀 2kg 정도를 구입할 수 있게 됐다.

탈북자와 현지 선교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지난해 8월부터 한달에 10일분 식량이 배급되기 시작했으며, 유엔이나 민간단체에서 지원한 의약품도 장마당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덕분에 과거에는 중국 조선족 보따리 장수들이 대량으로 식량을 실어가서 북한에 파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으나 최근에는 식량을 가지고 들어가 장사하는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정부가 지원한 비료가 변경지역인 함북 무산의 농장에까지 보급된 사례도 확인되었으며, 이것이 남한에서 지원된 비료라는 사실까지 주민들은 알고 있었다. 이런 사례를 종합하면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들의 ‘조건없는 대북 식량지원’이 충분한 양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사정이 호전됐다는 의견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동북 3성 지역에서 탈북자 46명을 보호하고 있는 선교사 C씨는 “북한의 식량사정이 호전됐다고는 하지만 국경지역에는 지난해 15일분 강냉이만 배급됐을 뿐 개선된 것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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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좋은 벗들'운영하는 법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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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강제송환 않게 중국 정부 설득을"

법륜 스님은 사단법인 '좋은 벗들'을 운영하며 '조건없는 대북 식량지원'을 호소해 왔고, 실질적인 지원활동에도 앞장서 왔다.

-'좋은 벗들'의 대북지원에 대한 원칙과 철학은?

“북한에 대한 지원사업은 북한 지도자와 핵심계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 민중의 실질적인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는 목표를 뚜렷이 가져야 한다.”

-‘좋은 벗들’은 연간 5000억원의 인도적 대북지원을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OECD 가입국이 제3세계에 지원하는 금액을 보면 가장 비율이 높은 노르웨이가 연간 GDP의 0.99%, 비율이 가장 낮은 미국이 0.1%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도 GDP의 0.1%를 대북지원에 사용할 경우 금액이 연간 5000억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그 정도면 북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인도적 대북 지원은 대량으로 긴급히, 조건없이 해야 하며 정치적 사안들은 천천히, 하나하나, 서로 이익이 되는 선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북한은 현재도 매우 곤궁한 상태기 때문에 연간 5000억원씩 3~5년 정도 지원하면 보편적인 취약계층의 굶어죽는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한 결과 어떤 결과가 나타났다고 보는가.

“우리나라 민간단체들이 식량과 생필품을 지원한 보육원의 경우 지원하기 전과 비교해 보면 성장기 어린이들의 발육부진, 영양실조, 체격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민간단체들이 지원한 곳의 경우 발육부진 현상은 크게 줄었다. 우리는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어느 지역의 누구에게 지원하는지 분배의 투명성을 확고하게 요구하고 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신규 탈북 난민의 수가 줄고 있다는 보고가 있는데.

“기존 탈북자들이 대륙 곳곳으로 물처럼 숨어들어 표시가 나지 않고 있을 뿐 탈북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를 강제송환하지 않도록 외교적 협조를 구하는 것이 실리적이라고 본다.”
/김용삼 주간조선 기자 ys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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