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순의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잇달아 대미(對美)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핵개발 동결이나 미사일 시험발사 유보 등 기존의 북·미 합의도 경우에 따라서는 깰 수 있다는 식의 위협적 발언들을 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새 행정부와 아예 등을 지려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대화를 위해 목청을 가다듬고 있는 것일까. 주미대사를 지낸 박건우(朴健雨)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원장과 서울대 하영선(河英善) 교수의 대담을 통해 들어본다. /편집자

▷박건우 전 대사=북한에서 연일 나오는 대미 비난 보도들에 대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배경은 간단하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나 파월 국무장관의 발언들이 북한의 자존심을 상당히 자극했을 것이다. ‘경애하는 지도자’에 대해 ‘의구심(skepticism)’이 있다고 하고, ‘전제군주(despot)라 하고, ‘북한은 개방하든 안 하든 붕괴할 것’이라고 했으니, 북한체제에선 펄펄 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아직 외교진용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구체적 정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나의 외교일선 경험에 비추어보면 취임 직후인 지금의 미국 대통령은 세계에서 돌발적 위기가 발생할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일차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고, 주로 정보기관과 군(軍) 쪽의 보고를 받는 상태이기 때문에 대북관(對北觀)도 다소 강경하게 치우쳐 있을 것이다.

▷하영선 교수=최근 북한의 대미비난은 내용에 있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북한은 강성대국을 추구한다는 기본 목표에 변함이 없으면서, ‘신의에는 신의로, 강경에는 강경으로 대응하는 것이 조선 인민의 혁명적 원칙’이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식 상호주의라 할 수 있다.

지난 10년 간, 즉 1990년대의 북·미 관계를 보면, ▷영변 위기 금창리 위기 ▷대포동 위기 등을 겪었다. 이들 위기들은 사태 발단→벼랑끝 외교→협상을 통한 합의 도출의 단계로 해결됐다. 부시 행정부 출범에 따라 북·미 관계에 새로운 위기가 올 것인지, 최근 북한의 태도가 그같은 제4의 위기의 전조가 될 것인지가 문제다.

▷박=지금의 북·미상황은 과거의 위기들과는 다르고, 가라앉히기도 쉽지 않겠나 생각된다. 다만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직접적인 위기를 조성한다면 부시 행정부도 결코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결과적으로는 위기가 극복될 것으로 본다.

당장 미국은 이번주에 워싱턴을 방문하는 중국의 천지첸(錢其琛) 외교담당부총리에게도 북한에 대해 일정한 신호를 보낼 것이고, 여러 채널로 북한에 메시지를 전할 것이므로, 북한이나 미국이나 모두 현재 상황에서 극단으로 사태를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하=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민주당식 포괄접근’이었다면 부시 행정부도 결국은 ‘공화당식 포괄접근’ 이상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즉, 외교와 군사,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고 양쪽으로 다 접근하는 투-트랙(two-track)이 될 것이다.

공화당 행정부는 외교적 접근에 있어서, 즉 대북 협상에 있어서는 ‘상호성 원칙’과 ‘검증’에 전보다 훨씬 큰 비중을 둘 것이고, 군사적 억지(抑止)나 제재(制裁)에 있어서는, 클린턴 때의 페리 보고서보다 공화당쪽 아미티지 보고서에서 훨씬 ‘적극적인 수단’들이 언급됐으므로 단호할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도 나름대로 대미 투-트랙 접근을 취할 것이다. ‘신의엔 신의로, 강경엔 강경으로’ 응할 것이다. 북·미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주장과 정책을 진행시켜 나가다가 벼랑끝에 이르러 해결을 찾는 식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클린턴이 임기말에 매듭지으려 했던 상황보다는 훨씬 까다롭고 어렵게 협상이 진행될 것이다.

물론 서로가 일정하게 강경한 모습을 취하다가 상황을 잘 조정하지 못하면 갑자기 위기에 이를 수도 있다.

▷박=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역할이 대단히 커지고 중요해진다. 우리는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 둘 다 잘 유지해서 우리의 독자적인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한·미 관계를 원활히 해서 북·미 관계도 잘 가게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양쪽을 균형되게 잘 해야 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다른 쪽이 어려워진다. 최악의 경우는 양쪽 다 잃는 건데, 그런 일은 결단코 없도록 해야 한다.

▷하=한국외교는 그 양쪽(미국과 북한)의 신뢰를 다 얻어서 돌파구를 찾느냐, 아니면 양쪽 모두로부터 불신을 당해 대혼란으로 들어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리 외교가 우선 상황을 정확히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만 분석하는 단계를 넘어, 상대방의 의중과 구상을 예측해내야만 우리가 제대로 조정외교를 펼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북한이 중요하다. 현재 한·미의 대북관이 완전히 같지 않다면, 북한은 우리 정부가 말하는 대북관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실천지향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정리= 이하원 기자 may2@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