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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극 '건설장의 처녀들'의 한장면.

남이나 북이나 드라마를 좋아하기는 마찬가지다. 북에서는 식량난이 심해진 90년대 들어 TV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고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과거에 만들어진 예술영화나 드라마들은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것이 많아 별로 인기가 없었으나 최근의 연속극들은 비교적 실제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일상생활속에서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마당에 드라마는 주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어린이들도 어린이방송시간에 방영되는 만화영화를 좋아하지만 그 다음은 역시 드라마를 즐겨 본다. 특히 가정주부들의 드라마 열기는 말릴 수가 없어 밥짓다가도 시간이 되면 텔레비전에 빠져든다.

지난 13일 북한 중앙텔레비전에서는 천세봉의 장편소설 ‘석개울의 새봄’을 각색한 다부작 드라마의 방영을 마쳤다. 이 드라마는 1992년부터 16부작까지 방영됐고 이후 후속 편을 만들만큼 주민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이런 인기작들은 몇 번씩 재방송하고 있다. ‘석개울의 새봄’은 8.15 광복직후 북한의 토지개혁 당시의 한 농촌마을을 소재로 하고 있다. 지주들이 토지개혁을 반대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남녀간의 사랑도 삼각관계나 불륜 등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또 일반농민들이 이해타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은 너무나 리얼해 당시를 경험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에게 아주 인기가 좋다.

‘석개울의 새봄’에 이어 14일부터 새로 시작한 ‘건설장의 처녀들’ 역시 젊은이들 속에서 인기가 좋은 드라마다. 군복무시절부터 묘한 관계로 서로 얼굴을 익혀오던 인민군 여소대장(주인공)과 인민군 중사(남자주인공)는 제대후에 서로 다른 기관을 책임지고 경쟁관계로 만나게 된다. 군대시절 콧대높은 여소대장으로부터 번번이 퇴자를 맞았던 남자 주인공은 공사장에서도 그녀와 경쟁을 벌이지만 성과가 없어 자존심에 상처를 받지만 결국은 서로 돕고 이끌면서 맡은 공사계획을 함께 수행하고 사랑도 결실을 맺는다는 줄거리다. 청춘남녀들의 애정과 밀고 당기기를 비교적 재미있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드라마도 90년대에 한번 방영돼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가 재방송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학교생활을 소재로 한 ‘1학년생’은 90년대에 북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억으로 떠올리는 연속극이다. 학생들의 일상생활을 상세하고 리얼하게 보여주어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함께 즐겼다. 한수정(21)씨는 ‘1학년생’에 나오는 금동이와 재수는 북한 학생들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인기가 좋았고, 특히 금동이로 나온 배우 이철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기억한다. ‘1학년생’은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재방송을 한번도 하지 않았는데, 지나치게 리얼한 장면들과 충성심 표현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이밖에도 함남 단천 용양광산의 광부들을 소재로 한 ‘백금산’과 ‘청춘송가’ ‘첫기슭에서’ ‘여박사의 마음’ ‘우리의 풍습’ 등이 소개되고 있다.

모든 드라마 속에는 반드시 수령의 위대성이나 충성심이 표현돼야 한다. 당국에서도 주민들을 교양하는데 드라마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고, 기존의 딱딱하거나 실정에 맞지 않는 내용에서 과감히 탈피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가급적 사실주의적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추세이다. 이때문에 남녀간의 사랑 묘사도 과거보다는 유연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대개 드라마 방영시간은 1회가 50분 정도이며, 짧은 것은 35분 정도이다. 방영 시간은 저녁 8시30분이나 9시30분이다.

90년대 들어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게 된 것은 북한의 종이난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주민교양에 도움이 되는 작품이 나와도 종이가 모자라 대량으로 찍지 못해 이 소설들을 극화해 주민들에게 보여주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당에서 인정하는 책들은 드라마로 각색해 방영하는 것이 장려됐다는 것이다. 이제 북한에서 작가로 성공하려면 작품이 드라마로 소개돼 인정받아야 할 정도다./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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