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편지에 쓰인 글자가 안보여...”

북으로부터 온 맏형 지원탁(73)씨의 편지를 받아든 종탁(61.서울 영등포구 신길6동)씨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때문에 더 이상 편지를 읽어내려갈 수가 없었다.

분단 후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이산가족 서신교환 대상에 포함돼 설레던 가슴을 안고 15일 오후 부랴부랴 적십자사를 찾았던 종탁씨의 가슴은 어느새 서러움으로 가득차 버렸다.

'부모님은 살아계신지, 너와 동생들도 잘 있는지 궁금하구나...’라는 안부로 시작된 형의 편지는 이내 자신이 전쟁중 인민군에서 의사로 있다가 제대한 뒤 보건부에서 의사생활을 하고 현재는 편안히 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글로 이어졌다.

'공화국 정권이 제도가 하도좋아 아들딸 5남매를 키우는데 돈 한푼 들이지 않고 공부시켜 아들이 대학을 졸업했으며 나라의 민족간부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며 북한에서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니 안심하라는 글이 편지의 절반을 차지했다.

6남매중 넷째였던 남쪽의 동생 종탁씨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의대를 다니고 있던 큰형 소식이 갑자기 끊겨 더 이상은 형을 볼 수가 없었다.

지난해 9월30일 2차 남북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통해 형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3차상봉은 신청하지 않았다.

'혹시나 나를 만나 부스럼이나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 돼 형이 살아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너희들의 몸건강을 바라며 이만 전한다. 형 원탁으로부터’로 마무리되는‘야속한’이 3장의 편지는 원탁씨와 원탁씨의 북측가족 사진 2장이 전부였다.

종탁씨는 더 이상 편지를 받았다는 기쁨도, 할말도 없었다. 단지 서러움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 글을 썼던 바로 그 손을 한번만이라도 잡아봤으면..” 이라고./연합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