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닉시 미국 의회 입법조사국 전문위원

미국이 주한미군 2여단을 차출, 이라크에 배치하기로 한 결정은 충격적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조용하고 냉정하게 반응했다. 한국의 관료들은 몇 달 전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미군의 일부 철수가 임박했다는 징후는 작년 중반부터 있어 왔다.

미국에 주한미군 차출의 의미는 분명하다. 이라크 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으로 심화된 미군 병력난의 직접적 결과인 것이다.

미국은 최근 이라크 주둔 병력을 13만8000명 규모로 유지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주한미군 및 주일미군 등 그동안 손대지 않았던 나라의 미군 병력을 빼내려고 한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저항세력 격퇴 실패, 종교갈등 심화, 민주정부 수립 전략의 부진 등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라크의 상황은 미군을 전투사단 중심에서 더 작고 기동력 있는 여단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국방부의 장기 계획을 가속화시켰다. 주한미군의 재편 일정도 앞당겨졌다.

차출된 여단은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현재의 추세를 대테러 전쟁과 연관시켜 보면 향후 주한미군 가운데 다른 여단의 철수와 지원 부대의 추가 감축 가능성이 매우 크다.

주한미군의 지상전투 부대는 상시(常時) 주둔 방식에서 1개 또는 다수 여단이 일정 기간 주둔하다가 교체되는 순환 배치 방식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미군 지휘체계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한국에 이런 변화의 의미는 상대적으로 덜 분명하지만, 급작스런 위험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단 병력의 철수가 북한의 군사 위협을 증대시킬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은 남한을 공격할 경우 여전히 미국이 개입할 것임을 알고 있다. 지상군 병력은 빠듯하지만, 미 공군과 해군 전력은 충분하다. 미국의 장거리 전략 폭격기들은 이미 괌 기지로 돌아와 있다.

북한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강력한 억지력으로 작용하는 미군 전력은 괌 기지의 B-52 폭격기들이다. 또한 북한은 대남 적대행위를 중국이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북한에 ‘생명 유지장치 같은’ 중국의 지원이 중단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안전보장은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자체의 취약성일지 모른다. 30~45년 된 낡은 무기, 대규모 군사훈련을 불가능하게 하는 연료 부족, 붕괴된 군수산업, 최악의 식량난 등 객관적으로 볼 때 북한은 비무장지대에서 더 이상 전면 침략을 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지휘부가 ‘보장책’을 원한다면 비무장지대 남쪽의 전략 거점에 2~3개 대대의 소규모 미군을 ‘인계철선’으로 주둔시킬 수도 있다.

주한미군 차출은, 비무장지대의 미군 철수가 부시 행정부의 북한 공격 계획을 호도하려는 술책에 불과하다는 여러 한국인들의 생각을 불식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미국이 만약 북한을 공격하려 한다면, 한국과 일본에서 병력을 빼내 이라크에 배치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인들은 미국이 적대행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북한의 선전에 대해 좀더 비판적인 견해를 갖게 될 것이다.

주한미군 차출이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에 영향을 줄지는 오직 한국인들만이 결정할 수 있다. 이라크의 상황은 좋지 않다. 미국은 곤경에 처해 있다. 그러나 국가들이 어려울 때 동맹국이 가장 소중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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