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북한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진정한 승부처는 이미 실무 조정이 끝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이 아니었다. 정상회담 이후 1시간 동안 계속된 전 주한미군 병사 찰스 젠킨스와의 ‘협상’이 그의 시험대였다.

젠킨스는 1965년 판문점에서 근무하다가 월북했다. 일본으로부터 납치된 소가 히토미라는 여인과 결혼해 현재 딸 2명을 두고 있다.

그러나 소가를 비롯한 납치 피해자들은 재작년 일본에 일시 귀국한 뒤 그냥 일본에 눌러 앉았고, 일본 정부는 이들을 위해 젠킨스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의 일본 입국을 추진해 왔다.

일본인들은 “북한보다야 일본이 훨씬 살기 좋은 나라 아니냐”며 입국을 당연시했고, 이런 분위기는 그들의 일본 입국을 국가적 자존심과 연결시키는 분위기로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일본에 갈 경우 주일미군에 체포돼 군법회의에 처해질 우려가 있다’며 일본행을 거부하는 젠킨스다.

고이즈미 총리는 납치 피해자 가족들이 ‘전원 데려와 달라’는 기원을 담아 전달한 파란 배지를 가슴에 단 채 1시간 넘게 직접 설득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설득은 실패했고, 고이즈미 총리의 체면도 구겨졌다.

결국 젠킨스의 귀국을 막은 것은 ‘군법’의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미국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면서까지 젠킨스의 사면을 요구했으나 먹혀들지 않았다.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대답뿐이었다.

납치자 본인도 아니고 그 가족을 데리고 오기 위해 평양을 찾은 일본의 총리, 외교상의 부담을 감안하고서라도 탈영병에 대한 ‘원칙’을 주장한 미국의 대통령. 국체(國體)는 간단하게 지켜지는 것이 아님을 두 지도자들은 보여주고 있다.
/최흡·도쿄 특파원 po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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