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의 이탈을 막아라"

1999년 4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 도중 방북한 조총련 제1부의장 서만술을 급히 불러 내린 비밀지침이 공개됐다. 일본 월간지 "현대코리아" 1~2월호가 그 전문을 게재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총련 세대교체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 왔음이 밝혀졌다.

이 발언의 일부 내용은 국내 언론에도 소개됐지만 전문은 이번에 공개됐다.


▶허종만 책임부의장
김 위원장은 46년간 조총련에 군림해온 한덕수 의장이 와병으로 활동을 중단함에 따라 조총련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허종만 책임부의장에 대해 "과격한 데가 있지만 젊어서 이해한다"는 인물평을 하기도 했다. 또한 "허종만 책임부의장 동무와 젊은 사람들이 (함께) 개량주의적 외피를 입고 사업을 하되 내적으로는 우리의 기본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내실을 충실히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서만술 제1부의장
한덕수를 이을 차기 의장으로 유력시되는 허책임부의장은 의장, 제1부의장, 책임부의장, 부의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조총련 의장단 가운데 상대적으로 "젊은층"에 속하는 인물이지만 이 지침 하달이 있었던 99년에 그도 이미 60대 후반의 노인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허종만에 거는 가장 큰 기대는 "신세대식 사업방법으로 그들의 이탈을 막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조총련은 40년간 원칙주의를 고수할 뿐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면서 최근 조총련 약화의 이유를 "융통성 없는 원칙고수로 동포대중을 이탈시킨 것"으로 파악했다.

"남들이 노선이 전환됐다고 의심하거나 비난해도 내가 믿어줄테니 염려 말고 과감히 개량주의적으로 방법을 바꾸라"고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조총련에 대한 이런 구상이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서만술 제1부의장이 선출된 조총련 제18회 전체 대회(98년) 때부터 해 왔으나 전달할 기회가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김 위원장의 생각은 변화된 세계정세에 대한 인식의 결과로 보인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최첨단 과학기술을 갖고 있는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로 1950년대 투쟁한 반동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하고, "미·일 등 제국주의 반동세력이 국제적으로 연합 사회주의 붉은기를 고수하려는 우리를 고립 압살시키려 광분하고 있다"며 "고립감"과 "공포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신세대관도 심히 부정적이다. "지금 세대의 사상적 준비정도는 1세와는 완전히 다르고 그들은 지금 식으로 하면 민단으로 가게 된다"면서 "아편도 예전에는 노인네들이나 했는데 요즘에는 젊은 것들이 주로 한다"고 했지만 이들의 이반은 조총련 와해로 간다며 고민의 일단을 드러냈다. .

그러나 이런 김위원장의 전환 모색은 어디까지나 "적구(적구-여기서는 일본)조직"인 조총련에 한정될 뿐 "조국(북한)"에 관한 한 변하지 않는 원칙 고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적극 유도하는 조총련의 변화는 사실상 초기 공산혁명기부터 이어져 온 통일전선전술에서 "전술"적 차원의 변화일 뿐임을 강조하고 있다. "원칙과 전략은 두고 전술만 바꾼다"는 해묵은 원칙의 반복이라면 최근 조총련과 민단의 화해분위기 등 변화 조짐도 흔쾌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것 같다./김미영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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