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7일)이 눈앞에 다가온 1일 워싱턴에서는 한·미관계를 새롭게 조망하는 행사가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과 브루킹스연구소 주최로 잇따라 열렸다.

헤리티지재단의 세미나는 ‘한반도 평화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이 주제였고, 브루킹스연구소는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의 방미’에 초점을 맞춰 세미나를 열었다. 첫 상견례를 하는 조지 W 부시(George W Bush)와 김 대통령 앞에 가로놓인 과제를 진단한 것 중 이날 가장 많이 등장한 화두는 역시 북한이었다. ‘한·미 양국이 북한 문제를 어떻게 보조를 맞춰가며 풀 것인가’에 대해, 한반도 전문가들이 쏟아놓은 의견들을 요약한다.

■브루킹스연구소

조엘 위트(Joel Wit) 초빙연구원 =부시 행정부가 출범 한 달을 갓 넘긴 상태에서 열리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협상이 아닌 협의의 성격이 짙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김 대통령은 이번 방미를 통해 국내 정치적 지지 확보, 미국의 한반도 정책 검토 촉진, 미국의 온건파 입지강화에 영향력 행사 등을 겨냥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는 매우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이 주도해야 하며 미국은 적극 개입하되 남북 화해 과정을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러 정상회담 공동 코뮈니케에 포함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관련부분이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민감하고 어려운 현안이 되겠지만, 이 문제에 너무 집착하면 다른 현안이 소홀히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교수 =부시 행정부는 아직 대북 협상을 서두르지 않고 있고 핵과 미사일 등 현안 해결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관건은 미국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결심을 하느냐 여부이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과 북한 간에 정상적인 외교채널을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하며, 대북 정책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이 NMD 문제에서 러시아 편에 섰다’는 뉴욕 타임스의 기사에 동의하지 않는다.

■헤리티지 재단

존 틸럴리(John Tilelli) 전 한·미연합사령관 =한반도 평화는 확고한 방위태세와 대북 억지력이 담보돼야 한다. 현 시점에서 대북 포용정책의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우선 생존과 체제 유지, 경제 재건을 목표로 남북 대화에 임하고 있으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약화시키는 점에 있어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 한·미동맹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주한미군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또 대북관계를 너무 빠르게 진전시키려고 애쓰기 보다는 핵과 미사일 등에 대한 검증을 주의깊게 관철해나가야 한다. 검증문제는 미·북 간에 합의에 이르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니콜라스 에버스타트(Nicholas Eberstadt) 미국기업연구소 연구원 =북한은 6·25를 일으키기 10일 전 한국에 평화회담을 제의한 이후 ‘전략적 기만(strategic deception)’을 계속해오고 있다. 군대우선 원칙을 토대로 강성대국을 지향하는 북한의 노선에는 변함이 없다. 김정일(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년 10월 말 조명록(조명록) 북한특사가 오러클사(사) 등을 방문하고, 올 연초 김 위원장이 상하이를 찾은 것을 경제개혁 움직임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지만, 군 첨단화를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 미사일 문제도 북한은 93년 중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 한 뒤 중단했다가, 98년에는 훨씬 발전된 대포동 미사일을 띄웠다. 북한은 물밑에서는 남한체제의 정당성을 아직 인정치 않고 있으며, 북한 언론들은 김 대통령의 전언과는 달리 계속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데이비드 스테인버그(David Steinberg) 조지타운대 아시아학과장 =한·미 양국은 북한을 평가하고 다루는 공동의 잣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관심 이슈는 한반도가 우선이고, 그 다음에 동북아, 세계로 이어진다. 반면 미국이 북한 문제를 볼 때는 세계적 관심사가 우선이고, 동북아·한반도로 우선 순위가 낮아진다. 때문에 양국 간에 이슈의 우선 순위에 관해 긴장이 있을 수 있으며 이를 충분한 협의를 통해 해소해야 한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상호성의 문제가 최근 많이 거론되는데, 한국 정부의 대북지원은 일종의 ‘떡값’ 성격을 띠고 있으며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적절한 전략이다. 관건은 한국과 미국의 국내정치적인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다.

한승주(한승주) 전 외무부장관 =부시 행정부가 한국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지지 여부’에 대한 질문은 무의미하다. 한·미 양국의 대북 아젠다(의제)에 어떤 과제가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만 북한의 변화 의도를 과대평가하기 보다는 도발의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상호주의는 대북 지원의 목표에 따라 엄하게 적용할 것과 느슨하게 적용할 것을 구분, 선택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

/ 워싱턴=주용중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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