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일간의 중국방문 일정을 끝냈다. 중국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이 베이징을 떠난 직후 “김 위원장이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19일부터 21일까지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으며, 양측 지도자들은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입장을 유지키로 합의했다”고 짤막하게 보도했다. 회담 내용이나, 양 정부의 논평이 나오지 않아 방중 의미를 구체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우나, 몇 가지 큰 그림은 그릴 수 있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은 신지도부의 취임을 축하하는 양국 정상 간 상견례의 성격과 함께 신뢰구축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이번 방중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취임 이후 ‘화평굴기(和平 起)’라는 슬로건 아래 평화외교의 주도권을 모색해 왔으며, 6자회담은 이 정책의 실험대 역할을 해왔다. 중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을 통해 6자회담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코자 했다.

사실 중국으로서는 다급하다. 지난주 중국을 방문했던 딕 체니 미 부통령은 6자회담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감을 표명하며 대북 압력을 강력히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안전보장과 경제적 보상 없이는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상외교만이 이러한 교착과 파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 하겠다.

이번 방중의 배후에는 양안(兩岸·중국-대만)문제와 북핵 문제의 연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수이볜 총통의 당선 후 더욱 강경해진 대만의 독립 노선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국가는 미국밖에 없다. 미국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중국이 북핵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고, 김 위원장의 방중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가시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역시 이번 방중의 전략적 의도가 크다. 현 시점에서 미국의 강경 조치를 비토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중국뿐이다. 따라서 정상외교를 통해 중국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재확인함으로써 안보 위협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은 중국을 매개로 미국측이 확실한 대북 안전보장을 해줄 경우, 핵무기를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법으로 폐기)’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 역시 큰 변수로 작용했다. 김 위원장의 2001년 방중 후 북한은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 개선조치, 그해 9월의 신의주 행정 특구 등 개방개혁을 향한 혁신적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특히 최근 북한은 개방·개혁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방중은 북한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외교적 노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특히 북핵 위기 재현 이후 최초의 외국방문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립 속에서 경직된 사고로 일관하는 것보다는 중국의 지도자들과 중지를 모으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을 통해 두 가지 사항을 분명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 하나는 북핵 문제의 전향적 해결 없이 북·중 관계의 획기적 개선은 물론, 개방·개혁에 대한 국제적 지원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북핵 문제와 경제 살리기를 위해 북경뿐만 아니라 서울과의 협의와 공조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남한을 배제한 북한의 외교적 행보는 엄청난 반(反)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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