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대한항공(KAL)기 납북 후 귀환하지 못한 11명 중 생사가 불확실했던 잔류승객 7명의 생존가능성이 28일 제기됐다. 3차 이산가족 방북단의 일원으로, 당시 승무원이었던 딸 성경희(55)씨를 만나고 이날 돌아온 이후덕(77)씨는 기자회견에서 “딸이 ‘(승객들이) 다들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그러나 “딸이 ‘승객들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또 “(납북 당시) 연포비행장에 내릴 때까지 북한 땅인지 몰랐고, 내려보니 인민군이 늘어서 있었다”는 딸의 말을 전했다. 이 말은 납북사건 직후 “두 조종사에 의한 자진입북”이라고 한 북한당국의 발표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대한항공기 납북사건은 69년 12월 11일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 등 51명을 태운 「YS-11」쌍발여객기가 대관령 상공에서 북으로 납치된 사건으로, 66일 뒤 탑승자 중 승객 39명(남자 32명·여자 7명)만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다. 다음은 이씨 일문일답.

―방북소감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딸은 북에서 무슨 일을 하나?

“연구원(대학원)에 다닌다고만 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원 3년 동안 역사학을 공부했다. 남쪽에서도 역사학을 전공했었다.”

―다른 납치자 얘기는 들었나?

“다들 잘 살고 있다고 그러더라. 정경숙(납북당시 동료 승무원)과는 자매처럼 지내며 애들끼리도 ‘이모’라 부른다고 했다. 기장과 부기장도 잘 살고 있다더라.”

―딸이 기장, 부기장과는 만나나?

“전엔 만났는데 지금은 안 만난다고 했다.”

―딸이 다른 승객들은 만났다고 했나?

“만나지는 못하고 잘 산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고 했다.”

―정경숙도 만났나?

“만나지는 못했다. 딸이 얘기하기를 ‘너는 엄마가 찾아와 좋겠다. 나도 만났으면 좋겠다’며 부러워했다고 한다.”

―외손주들은 뭘 하는지?

“외손녀는 김일성종합대학 독어독문학과 연구원, 외손자는 군인이었다.”

―딸이 납치라는 말을 썼나?

“납치라는 말은 하지 않고, ‘서울이 아니더라’라는 말만 했다.”

/최재혁기자 jhchoi@chosun.com

김민구기자 roadrunn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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