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북한측 사람들이 ‘장군님 은덕’을 내세워 남한 국민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고,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듯하다.

그들이 이렇게 열을 올리며 장군님을 치켜세우고 선전을 하는 것은 남한에 오기 전에 사전교육을 철저하게 받는 것도 있지만 훗날을 위한 일종의 ‘생명보험’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충성심 표현을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돌아가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전혀 ‘장군님’ 발언이 나올만한 분위기도 아닌데 카메라만 오면 장군님 은덕을 선전하는 것은 얼마나 그들이 절박한 상황에 있는가를 짐작케 한다.

북한에서 남한출신이나 월남자 가족들은 밑바닥에 있거나, 반대로 아무리 출세했어도 북한당국의 감시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은 남들보다 더 말을 조심해야 하고 충성심을 나타내야 한다. 북한에서 남한출신들의 삶은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사람들이 꿈속에도 갈 수 없었던 서울에 오게 됐으니 그 감개무량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은 그들에게 ‘적지’로 표현된다. 적지에서 얼마나 잘 싸우는가는 바로 수령의 우상화발언을 얼마나 잘하는가로 평가될 수 있다. 북한의 감시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는데 김정일 장군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사상성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시킨 것 보다 더 열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남쪽 사람들은 북한을 자극할 소지가 있는 말들은 가급적 피한다. 북쪽사람들이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며 감시하기 때문이다. 만약 남쪽가족이 북한에 가서 남쪽체제의 우월성과 김대중대통령 찬양을 했다고 하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봉변을 당해도 톡톡히 당할 것이다.

위대한 자는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도 위대함이 인정된다. 오히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사람도 ‘장군님’ 발언들 때문에 식상할 것이다. 북한은 아직 자유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장군님’ 칭송발언은 거꾸로 김정일 위원장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있음을 김위원장 자신이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남한에 와서까지 이런 발언을 할수록 경직된 북한사회의 단면을 보여줄 뿐 김위원장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반세기 이산가족들이 만난 자리에서 분위기를 망치는 우상화 발언들은 하지 말게 하는 것이 남과 북 모두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앞으로 계속 될 이산가족의 만남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자제 되도록 우리 정부당국이 신경을 쓰야 한다. 북한 체제에 대한 실망과 암담함이 남한내에서 커진다면 남북관계의 진전도 장애에 부닥치지 않겠는가.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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