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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두달만 더 사셨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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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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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막내딸 걱정으로 마음고생만 하시다 떠나신 어머니가 이 소식을 들으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27일 평양에 머물고 있는 전 KAL기 승무원 성경희(55)씨의 어머니 이후덕(77)씨를 통해 당시 성씨와 함께 납북됐던 여승무원 정경숙(55)씨가 현재 평양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정씨의 오빠 현수(70.경기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씨는 '풍문으로만 들었던 동생의 생사를 이렇게 확인하게 돼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면서도 얼마전 세상을 뜬 어머니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막내딸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로 눈을 감을 수 없다'던 어머니 김금자씨는 끝까지 정씨를 그리워하다 노환으로 불과 두달여전인 지난해 12월5일 92살의 나이로 먼저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남파간첩들이 집필한 책과 독일에서 북한으로 넘어갔다 다시 남으로 내려온 오길남씨를 통해 몇해전부터 경숙씨가 `구국의 소리'방송국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듣긴 했지만 정확한 생사를 확인할 수 없어 애만 태우다 숨을 거뒀다고 정현수씨는 전했다.

성씨와 창덕여고 동기생인 정경숙씨는 연세대 도서관학과를 졸업한 뒤 성씨보다 한 해 뒤인 69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가 납북됐다.

당시 경숙씨가 납북됐다는 갑작스런 비보는 나머지 가족에게는 견디기 힘든 `겹시련'이었다.

해방직후 6남매중 첫째 현수씨가 직장관계로 먼저 남으로 내려온데 이어 어머니 김씨가 경숙씨 등 세딸을 데리고 합류했지만 생활고로 경범(65.여).항수(63) 두 형제는 청진에 있는 할아버지댁에 맡겨두는 바람에 경숙씨 가족은 이미 이산가족 이었던 것.

북에 두고온 두 남매 생각에 눈물 마를 날 없었던 경숙씨 집안은 막내 경숙씨마저 북에 남게 되자 하루도 시름이 잦아질 날이 없었다.

오빠 현수씨는 '경숙이는 막내인데다 형제들 사이에서도 특히 총명해 귀여움을 독차지 했었다'며 '사회초년생으로 아직 학생티도 벗지 않았던 앳된 동생이 32년 세월사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너무 궁금하다'고 말했다.

1차때부터 계속 상봉신청을 해왔다는 현수씨는 '다음 4차 상봉때라도 꼭 경숙이를 만날 수 있었으면 여한이 없겠다'며 '나머지 두 동생 소식도 경숙이를 통해 듣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반세기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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