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Bush) 미국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이라크 채무 재조정 문제 협의를 위해 오는 29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제임스 베이커(Baker) 전 국무장관의 방한 계획이 취소됐다. 그러나 당초 예정했던 베이커 특사의 일본·중국 방문은 예정대로 추진된다.

정부 당국자는 26일 “베이커 특사가 한승주(韓昇洲) 주미 대사에게 24일 전화를 걸어 ‘미국 국내 일정상 이번 아시아 방문기간을 단축할 수밖에 없게 됐으며, 이에 따라 부득이 한국 방문을 취소하게 됐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의 대(對)이라크 공적 채권 규모가 일본·중국에 비해 매우 작고, 한국 방문을 추진했던 데는 채무문제뿐 아니라 한국이 그간 이라크 안정화·재건에 많은 기여를 한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의 이라크 미수채권 규모는 공공채권 1억9000만달러(6600만달러에 이자를 포함한 액수), 민간채권 16억8000만달러(건설채권 12억9000만달러, 상사채권 3억9000만달러) 등 총 18억7000만달러(약 2조24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부시 미국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밝혔던 베이커 특사의 방한을 취소한 데는 또 다른 배경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탕감할 채권도 적은데 한국을 굳이 방문해 반미(反美) 논의만 격화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거나, 일본 중국에 비해 한국을 경시한 조치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나종일(羅鍾一)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기독교방송 라디오에 출연, “베이커 특사가 오지 않는 것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채권을 많이 갖고 있어 한국부터 오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공식·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이라크는 중국에 58억달러, 일본에 41억달러의 공공채무를 지고 있다. 이라크는 미국·일본·독일·프랑스 등 19개 채권국으로 구성된 ‘파리클럽’ 회원국에 모두 400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으며, 아랍권과 중국 등 기타 국가와 각국 민간기업들에 800억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25일 대(對)이라크 채권의 일부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26일 보도했다.
/ 권경복기자 kk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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