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핵문제 해결에 총력 기울일 듯
4강과 관계개선 바탕 남남협력 관심


북한의 외교는 내년에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강온 전략을 병행하면서 일본과의 수교 및 중국.러시아 등 우방들과 관계 증진에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2003년에 핵 억제력 강화와 북-미 교착 타개를 위한 대화 제의 등 미국측의 움직임에 따라 그때그때 강온 전략을 번갈아 구사했으나 부시행정부의 완고한 대북 적대정책의 장벽을 뚫지 못했고 북-일 수교교섭 역시 제자리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러나 올 4월 3자회담(4.23∼25)과 8월 6자회담(8.27∼29) 등을 거치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 일정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이들로부터 미국의 적대정책이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라는 공감을 얻어 내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미국과 관계개선에 있어 북한이 신년 초에 강공책을 선택할지 아니면 온건책을 구사할지 여부인데 이는 결국 `2004년 초'로 미뤄진 제2차 6자회담 속개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12월 3∼4일 미국이 한-일 양국과 6자회담 공동성명 초안을 작성하면서 사실상 북한의 `선(先) 핵 포기'를 요구하고, 북한이 `1단계 동시행동'만이라도 합의할 것을 역제의했지만 부시행정부가 이를 거절함으로써 6자회담 전망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포기 선언에 대해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및 군사.경제적 제재해제 등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차기 6자회담이 열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북한은 2003년 한 해 내내 그랬던 것처럼 곧바로 `핵 억제력' 강화 방침을 표명하면서 핵 시설 가동 등 실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노동신문이 지난 15일 미국이 `선 핵 포기'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것은 자신들을 핵 억제력 강화로 떠미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6자회담이 무산되면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정세현 통일부장관이 19일 CBS `뉴스레이다' 회견에서 "북-미간 입장차이가 좁혀지고 있다"며 낙관론을 편 것처럼 부시행정부가 태도를 완화한다면 북한은 핵 포기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으로 기대된다.

6자회담이 불투명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며 현재 상황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1.10) 미국이 `군사적 옵션' 및 `대북 봉쇄'를 거론할 당시와는 많은 정황적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2004년 미국 대선이 다가오고 있어 부시행정부가 북 핵 문제의 외교적 해법에 적극 나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국방연구원의 전경만 책임연구원(안보정책학 박사)은 "부시행정부는 이라크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일방적 군사주의를 일단 접고 북 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 하는 성과를 올리려 할 것"이라며 "`후세인 효과'(Hussain Effect)가 한반도 핵 문제 해결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테러지원국 해제와 경제-군사적 제재 해제, 에너지 및 인도적 지원 등 북한의 요구사항을 부시행정부가 이행하겠다는 의지만 표시한다면 북한이 먼저 핵포기를 선언할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으로서는 `선(先) 핵 포기'의 뜻을 이룬 셈이 되고,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약속을 받고 핵 포기 선언을 함으로써 `동시행동 원칙'을 관철시킨 것으로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미외교 뿐만 아니라 대일외교 역시 북한에는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평양 방북과 함께 `북-일 평양선언'이 발표됐지만 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수교교섭이 중단됐고, 이후 납치자 문제와 일본의 북한 선박 입출항 통제 및 북한의 식민지 배상 요구까지 겹쳐 양국 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다.

다만, 지금까지 12차례 진행된 일본의 대북 수교 교섭은 언제나 미국의 대북 접근과 동시에 이뤄졌다는 과거의 예로 미뤄볼 때 북-미 관계 향배에 따라 북-일 관계가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 박사는 "부시행정부는 새해 상반기 중에 한 두 차례 6자회담을 진행한 뒤 대선정국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고이즈미 정부에게 대북 접근을 종용할 수도 있으며, 고이즈미 총리 역시 자신이 착점한 대북 관계개선의 프로세스를 마무리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북한은 새해에 미-러-중-일 등 한반도 주변 4강과의 관계개선 외에도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및 중동 국가들과의 우호 증진에도 힘쓸 것으로 보인다.

핵 포기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북한은 대외관계 개선 및 경제협력을 미국이 방해하지 말 것을 요구해 왔기 대문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곧 세계 각국과의 관계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은 그동안에도 `자주'와 '평화' '친선'의 기치를 내걸고 개발도상국 간의 협력(남남협력)을 강조해 왔다.

새해에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핵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면 북한도 대외적으로 교류의 폭을 점차 확대하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오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한반도 냉전체제도 서서히 해소되겠지만, 북-미 핵 공방이 다시 가열될 경우에는 북한은 여전히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자본주의 시장경제로부터 소외되면서 한반도 긴장은 계속될 것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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