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고의 교향악단인 국립교향악단의 연주 모습.

북한 클래식 음악의 중심에는 ‘국립교향악단’이 있다. 6ㆍ25전쟁 전에 존재한 ‘조선인민군 협주단’이 모체가 됐다.

초기의 국립교향악단은 6ㆍ25 전에 세워진 ‘평양음악대학’ 졸업생들과 전쟁시기 소련에서 공부한 유학파, 그리고 남한에서 월북한 음악가들로 이루어졌다. 현재 ‘평양음악무용대학’ 기악과(서양악과) 교수의 대부분은 초창기 국립교향악단의 연주자들이다.

국립교향악단은 설립 초기부터 일반인들로부터는 냉대와 무관심을 받아왔다. 김일성에 의한 계급투쟁과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처절한 환경에서 교향악이라는 음악 장르가 설 자리를 없었다. 김일성은 집권 초기부터 "예술은 대중을 혁명투쟁에로 불러 일으키는 강력한 수단"이라며 자체 창작한 전투적인 가요풍 음악만 장려하였다.

중국의 문화대혁명도 북한의 음악인들에게는 시련의 시기였다. 김일성은 “사회주의적 정서에 맞지 않는 음악을 하려거든 피아노도 바이얼린도 필요 없다”고 역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개량된 민족악기를 위한 음악을 장려했다. 북한의 민족악기들은 5음계 방식이 아닌 12음계의 현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모두 개량되었다. 김정일이 중앙당 선전부를 시작으로 권력의 중심으로 다가서면서부터 서양악기와 민족악기를 혼합한 ‘배합 관현악’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도 음악인들은 전통 교향악의 명맥을 끈끈히 이어왔다. 북한 음악인들은 관현악곡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없자 일반 대중을 향하여 극장을 무료 개방하면서까지 클래식 음악 알리기에 나섰다. 클래식 음악이 북한 사람들에게는 ‘사치’일 따름이었고 정부의 제약도 심한 때였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제약이 풀려 FM라디오방송 한 개 채널을 클래식음악 채널로 운영하기도 했고, 학생들을 동구권의 유명 음악대학에 유학을 보내는 등 클래식 음악이 복원되었다.

현재 북한의 국립교향악단에는 일본에서 공부한 북송교포인 김병화가 책임지휘자(수석지휘자)로 있으며 카라얀 국제콩쿨 입상자인 김일진과 독일 유학파 지휘자 등 실력자들이 있다.

‘윤이상 관현악단’은 정치적 목적이 짙으며, 공연도 정치적 행사와 극소수의 음악 매니아를 위하여 이루어진다.

국립교향악단은 가요를 기초로 하여 관현악곡을 만들데 대한 김정일의 지시로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전호속의 나의 노래’ ‘아리랑’ 등 다수의 교향곡을 자체 창작하여 연주하고 있다. 또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등의 곡으로 정기 연주회를 가지고 있으나 음악을 전공하려는 학생들과 소수의 매니아에 국한될 뿐이다. 북한의 일반 대중에게는 외국의 클래식 음악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이 만든 영화 ‘이름없는 영웅’이라는 첩보영화에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일반 사람들이 곡명도 모른 채 콧노래로 따라하는 정도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도 잘 알려져 있는데 북한과 프랑스 칸느사가 합작으로 만든 만화영화가 방영되면서부터였다.

북한에서 그래도 순수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열정파들은 국립 교향악단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박진수(가명ㆍ평양음악무용대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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