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史)’를 자기네 역사로 삼으려는 중국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국책사업을 진행 중이다.

5년간 총 200억위안(약 3조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그러더니 지난 6월에는 중국 공산당의 학술 분야를 대변하는 ‘광명일보’가 “고구려는 중국의 일부”라는 주장까지 하고 나섰다.

2004년 6월에는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WHC) 총회가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린다. 그 자리에서 올 7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가 중국의 방해로 보류된 북한 평양 고구려 고분군에 대한 재심과 중국 지린성 지안현 소재 고구려 유적에 대한 심사가 동시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여기서 북한 유적이 재심에서 탈락하고 중국쪽 유적만 통과될 경우 자칫 고구려사가 중국사로 공인(公認)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중국이 이처럼 역사문제를 국책사업으로 정해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자하는 데는 나름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조선족이 사는 동북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토대로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 지역에까지 개입할 수 있는 역사적 명분을 선점하겠다는 고도의 전략적 고려가 깔려 있다는 추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광명일보는 평양 천도(遷都) 이전까지만 중국사라던 종래의 주장을 버리고 천도 이후의 고구려사도 중국사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학술문제를 정치화하지 말라”는 광명일보의 느닷없는 요구야말로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중국의 고구려사 ‘탈취’를 넋 나간 듯 지켜만 보고 있다. 당장 이 분야 연구자들을 모아 대책을 세우고 필요하다면 북한과도 적극적인 공조체제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동북공정’의 실체도 밝히고 문제가 있으면 당당하게 따져야 한다. 더불어 중국측의 고구려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수집 분석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공백상태에 가깝던 우리의 고구려사 연구를 강화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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