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제일 추운 곳이 중강진(中江鎭)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70년 전인 1933년 1월 영하 43도라는 최저기온 기록을 세운 뒤 중강진은 분단 후 북한의 이미지와 겹치면서 ‘동토(凍土)의 왕국’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중강진은 마산에서 출발, 대구를 거쳐 한반도의 중심을 꿰며 북상하는 국도 5호선의 어엿한 종착 도시다. 남북 분단만 아니었더라면 서울서 반나절이면 달려갈 수 있는 ‘손에 닿을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중국으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했다.

▶지구 온난화는 ‘얼어붙은 땅’에도 어김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제 조선일보가 보도한 북한 기후변화보고서를 보면 한반도에서 가장 춥다는 중강진의 평균 기온이 100년 만에 3.1도나 올랐다고 한다.

평양이나 원산보다 2도 이상 오른 것이 이채롭지만, 온난화는 원래 그렇게 내륙, 북쪽에서 더 크게 영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북한 온난화의 기미는 자연 환경에서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적잖게 감지되는 것 같다. 일부 중국 접경지대에서는 한국과 휴대폰이 터지고 중국을 통해 북한에 유입되는 비디오 기기(VCR)와 비디오 테이프가 북한 주민들에게 은밀한 한류(韓流)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중고 비디오 기기 한 대에 100달러에서 300달러. 물론 아무나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일부에서는 벌써 DVD로 업그레이드하는 경쟁까지 일고 있다는 소식이다.

▶비디오 테이프로 제일 먼저 인기를 얻은 것은 임권택 감독의 액션 영화 ‘장군의 아들’. 한 경비대 군관은 비디오를 틀어놓고 영화 속 격투기를 부하들에게 훈련시키다가 들켜서 징계를 받았다는 풍문이 있을 정도다.

‘용의 눈물’ ‘태조 왕건’ 같은 역사 드라마에 이어 요즘은 북한 방송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애정 표현과 키스 신이 등장하는 트렌디 드라마가 인기라니, 대중문화의 힘은 과연 세다.

▶언 땅을 녹이는 훈풍에는 걱정거리도 섞여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기체농도가 높아진 것은 대기 오염의 흔적일테고, 산업화와 에너지 난(難)에 따른 과도한 벌채도 산골 도시 중강진의 온난화를 유달리 촉진한 요인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는 무공해 천국이란 게 없다. 사람이나 사회나 새 바람이 싣고오는 오염물질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면서 더 건강해지는 법이다. /박선이 논설위원 sunnyp@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