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이 정부 외교·안보 분야의 최고 실세로 꼽히는 인물이다. 정부 쪽 사람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직급상으로는 차관급에 불과한 45세의 이 차장을 실세로 지목한다. 이런 이 차장의 힘이 바깥에 알려진 것은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정부 내 논란을 통해서다.

지난달 27일 파병 규모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을 때 이 차장은 한 인터뷰에서 “2000~3000명 선”이라고 못박았다. 대통령이 ‘함구령’을 내린 바로 그날 NSC 차장이 대통령 지침을 어겨가며 공개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이다.

대통령과 일정한 교감(交感)이 있지 않고서야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눈치빠른 일부 부처와 관리들은 금방 알아채고 목소리를 낮췄지만, 좀 둔한 쪽에서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 “개인 의견”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결국 이 문제는 이 차장이 말한 대로 정리됐다.

요즘 서울에 있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을 만나면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이종석이 누구냐”라는 것이다. 그럴만도 한 게 이 차장이 외교·안보에서 대통령의 복심(腹心) 같은 존재라고들 하는데, 정작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답답하다고들 한다. 이 차장은 말 그대로 ‘토종 국내파 학자’다.

박사학위 논문을 포함한 그의 전공은 김일성과 주체사상이다. 그가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최근 구속된 송두율씨의 ‘내재적 접근론’을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그 논리적 구조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다. 이름하여 ‘내재적 비판적 접근론’이다.

이 차장은 전임 김대중정부 때 학계에서 ‘햇볕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인물이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에도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했다. 그는 ‘우리의 주적(主敵)은 북한이라는 표현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펴기도 했고, ‘대등한 수평적 한·미관계’를 강조해왔다.

그런 이 차장이 다음달 초 미국을 방문한다. 대통령 되기 전에 미국에 가 본 적이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처럼 그도 이번이 첫 미국 방문이라고 한다. 이 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가 최대 현안이었고, 이 때문에 나라가 편할 날이 없었는데 정작 이 문제를 다뤄온 핵심 인물 두 사람이 미국 땅에 발을 디뎌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NSC 사무차장의 ‘생애 첫 방미’가 신문기사가 되는 오늘의 현실은 많은 국민들을 현기증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나라의 사활이 외교에 걸려 있는, 세계에서 몇 되지 않는 국가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박두식논설위원 d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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