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은 오는 6월에 남북한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72년 7·4공동성명이나 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같은 남북한 관계의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남북 정상회담이 실질적 수준에서 이루어질지, 형식적 모양갖추기 수준에서 이루어질지, 아니면 회담개최 자체가 난관에 봉착할지를 조심스럽게 전망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오는 6월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남북 정상회담의 성격 파악이다.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간 합의사항을 보면 북측이 항상 강조하고 있는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남측이 강조하고 있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에 따라(북측의 발표는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이 6월 평양을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간단한 합의사항만으로 복잡한 정상회담의 성격을 전망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지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남북이 72년에 조국통일 3대 원칙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용어의 사용에 합의하였으나, 지난 30년 동안 이 용어들의 해석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입장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당국이 ‘반외세적 자주’와 ‘통일전선적 민족대단결’이라는 기존의 해석을 유지한 채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이라면, 정상회담은 북한의 국제역량과 국내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북한이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자주와 민족대단결을 새롭게 해석하는 속에 정상회담에 임하는 것이라면, 정상회담은 남북한 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 수준의 역사적 만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조국통일 3대 원칙의 신해석은 단순한 언어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탈냉전 3중 생존 전략의 새로운 변화 속에 비로소 가능하다. 북한은 21세기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미국, 일본 및 유럽연합 등의 자본주의 선진국가들과의 관계를 활용하려는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에는 눈에 띄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적대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이러한 속에서 우리 정부는 북의 정상회담 개최 합의가 대남정책 변화의 신호탄인가 아니면 기존 정책의 반복인가 하는 것을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하루 빨리 파악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정상회담의 성격에 따라서 회담의 의제 문제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다. 북한이 조국통일 3대 원칙의 전통적 해석 속에서 정상회담 의제를 협의하는 경우에 ‘반외세와 통일전선’의 한계 내에서 교류협력의 강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경우에는 교류협력의 강화를 통해 외세와 통일전선의 문제를 풀어보려는 한국의 입장과 쉽사리 합의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북한이 조국통일 3대 원칙의 신해석 속에서 정상회담 의제를 기존의 자주와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넘어선 ‘교류협력의 강화’를 모색하는 경우에 새로운 돌파구의 가능성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처럼의 남북 정상회담 협의가 우여곡절을 겪고 무산되거나, 정상회담을 위한 정상회담으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 정상회담으로 결실을 맺으려면, 북측과 협의를 이끌어나갈 정책 담당자와 국내외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 매체들이 지나친 흥분을 자제하고 보다 신중하게 정상회담 추진 방향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명실상부한 정상회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포용정책을, 명목뿐인 정상회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택적 포용정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하영선 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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