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개선과 지원 놓고 유럽국들 고민"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의 정치분석가인 존 세가 (30ㆍJohn Sagar) 씨는 요즘 북한과 수교를 맺는 EU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몹시 바쁘다. 북한과 남북관계 정세 일반에 관한 분석과 보고로 정신이 없다고 한다.

영국 출신인 그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1994년. 서울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던 그해 북한 핵문제로 인한 한반도 긴장 고조와 김일성 사망이라는 두 가지 큰 사건을 겪었다. 영국으로 돌아간 뒤 버밍햄대 대학원 국제학과에서 동아시아 지역을 연구하게 됐고, 석사 학위 논문도 남북한 관계에 대해 썼다. 그리고 작년 다시 한국에 와 현재의 일을 맡게 됐다.

EU가 북한과 본격적인 접촉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였는데, 이 때만 해도 북한은 여전히 국제사회의 ‘불량 국가(rogue state)’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3년동안 유럽연합과 북한 간의 관계는 극적으로 바뀌어 왔다. 세가 씨는 “이 같은 변화는 동아시아에서의 관계가 어느 국가의 편만을 들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 국면을 탈피한 결과”라며 “우리는 평화를 지지하기 때문에 남북한 관계 개선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은 북한에 1995년부터 2000년까지 2억8000만 유로(약 2억6천만 달러)에 달하는 지원을 펼쳤다”면서 “이 기금에서 7500 만 유로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기부했고, 나머지는 인도주의적 지원 형태로 쓰여졌다”고 밝혔다.

그는 EU 회원국들이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데 있어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애썼지만, 이탈리아가 작년 1월 4일 북한과 수교하자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등이 뒤를 이어면서 행동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손발이 맞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각 회원국의 대북한 접근법이 다르기 때문이며, 가장 큰 차이는 정치적 압력을 통해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냐, 아니면 인도적 지원을 통해 당장의 어려움을 덜어 주느냐의 선택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유럽연합의 입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것이고, 그에따라 북한과의 수교가 추진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럽연합은 미국과 달리 북한의 대외 관계에 있어서 주요 행위자가 아닌만큼 다소 유연한 입장이며, 이런 유연성이 최근 북한과 수교하는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앞으로 북한 상황에 따라 제한적이나마 인도주의적인 지원, 즉 의약품, 물, 공중 위생, 겨울 옷과 같은 지원을 계속할 것입니다. 인권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도주의적 지원을 미룰 수도 없지 않습니까?”

/마이카 애들러 기자 myca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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