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 자유자재 구사...머리-옷패션의 선두주자

최근 북한 중앙텔레비전의 방송을 진행하는 방송원(아나운서)들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한복 일색의 옷차림에서 양장으로 바뀌고 있고, 머리모양도 다양해지고 있다. 말투도 많이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북한의 아나운서들은 화술에 능통하고 실력있고, 당성이 강한 최고의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주로 김일성대학 어문학부나 영화연극대학 방송학과 출신 중 언변이 뛰어나고 총명한 학생들이 선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원은 라디오·텔레비전·외국어전문 방송원으로 나뉘고, 전문분야에 따라 정치·경제·문화예술 담당 방송원으로 구분된다.

북한에서 아나운서를 하기 위해서는 발음의 정확성과 속도감, 교양 등 3가지 기본원칙을 가져야 하며 상황에 따라 억양과 말투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남한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를 할 때는 격앙되고 분노에 찬 어조로,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관한 보도 때는 장엄하고 존경심어린 목소리로 바꾸어야 한다.

이들에게는 평양 창광원 미장원에서 최우선으로 머리를 다듬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방송원들의 머리모양이나 옷차림 등은 공인된 패션이라고 할 수 있으며, 유행을 선도하기도 한다. 특히 피복연구소에서 생산된 다양한 의상들은 아나운서들이 먼저 입게 된다. 방송원들에게는 이런 옷들이 싸게 공급된다.

이상벽(1997.12.25 사망), 리춘희, 전형규, 류정옥 같은 유명한 아나운서들은 오랫동안 북한주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리춘희는 30여년 동안 활동해 오고 있으며, 전형규는 이상벽의 뒤를 잇는 대표적 남성아나운서지만, 김일성 사망 시 눈물을 흘리지 않아 한때 방송활동에 타격을 입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원 가운데는 지방방송국의 이름없는 방송원으로 있다가 김일성 현지지도 때 재능이 인정돼 발탁된 경우도 있으며, 보도할 모든 내용을 외우는 비상한 암기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1996년 7월 25일 북한의 한 아나운서가 김일성사망을 김정일사망으로 잘못 읽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 이후 그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다시 들을 수 없게 됐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방송원들은 김정일로부터 과일과 시계, 옷가지 등을 선물로 받고 있으며, 이상벽이나 리춘희 같은 방송원들에게는 예술인들의 최고명예인 ‘인민 방송원’ 칭호도 수여됐다. 방송원들은 뉴스 보도 때 자신의 이름을 전혀 밝히지 않지만 주민들은 유명 아나운서의 이름은 대개 다 알고 있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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