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시간만이라도 아버님 뵙고 싶어요"
-본사로 보낸 재미교포 이경식씨 사연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시에 거주하는 이경식(52·여)씨는 6·25때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3년 전까지 북한에 살아있었다는 소식을 최근 듣고, 아버지의 얼굴만이라도 한번 보게 해달라고 남·북한 정상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탄원서를 조선일보로 보내왔습니다. 비단 이씨만이 아니라 이산가족의 절절한 심정은 꼭 같다는 생각에서, 또 이씨의 간절한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김대중 대통령님, 김정일 국방위원장님.

1949년 9월 1일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마송리 322번지에서 태어난 저는 6·25때 사라진 아버지를 뵙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립니다.
◇사진설명: 이경식씨 아버지의 옛모습.

7남매 장남이신 저희 아버지는 제가 두 살이던 6·25되던 해에 홀 할머니, 홀 어머니, 여섯 동생들과 부인, 그리고 저희 세 딸을 두고 집을 나가셨습니다. 열 두 식구의 가장이 없어졌으니 가족들은 한숨만 쉬며 모두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살아왔습니다. 대문 빗장을 열어놓고 밤이나 낮이나 눈이 빨갛도록 눈물을 흘리며 장손,장남을 기다리시던 증조 할머니와 할머니께서는 많은 한을 품고 세상을 뜨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얼굴도 전혀 모르고 "아버지"라고 불러보지도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반세기라는 세월은 저희 식구들에게는 너무나 아프고 눈물로 보낸 나날들이었습니다. 이 큰 아픔과 슬픔을 겪어보지 않고서야 어느 누가 알겠습니까?

아버지 이름만 아는 저에게 아버지와의 이별은 큰 괴로움과 큰 상처이며 풀 수 없는 큰 한이었습니다. 이런 아픔을 갖고 있는 저는 남북의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제 일같이 기뻐했고 '혹시나 우리 아버지도...'하는 생각을 하고 남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11월 남·북한 2차 이산가족 상봉 때 북에서 오신 한 분이 놀랍게도 저희 아버지가 3년 전까지 개성에 살다 평양으로 이사하셨다는 것과 재혼을 하셨다는 얘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이 소식은 식구들과 저에게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그 날은 기쁨에, 슬픔에 웃으며 울며 지샜습니다. 그후 지금까지도 가슴이 떨리고 밤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3년 전까지 살아계셨다니, 너무 기가 막히고 막힙니다. 지금도 살아 계실 것만 같아 몇 날 며칠을 생각다 못해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성함은 이(자) 재(자) 춘(자)이고, 1920년 1월 18일생이며 지금 83세이십니다. 아버지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언제까지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1시간만이라도 좋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판문점에서라도 아버지를 만나보는 것이 제 간절한 소원입니다. 단지 1시간만이라도 아버지를 만나뵐 수 있도록, 정말 1시간만이라도 좋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잠깐만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자식의 이 깊고 큰 한을 꼭 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미국 댈러스에서 이경식 올림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