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층 아파트 노인들 "땅 한번 밟아보는게 소원"

20층에서 40층에 이르는 평양의 고층아파트에 전기 부족으로 엘리베이트가 멈춘 지 오래다. 이 때문에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사람은 노인들이다. 이사해서 한 번 올라간 후 다시 내려와 보지 못한 노인들도 있다. 이들의 소원은 ‘땅을 한 번 밟아보는 것’이다. 노인들이 계단을 걸어서 오르내리기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자녀들은 돈을 써서라도 아랫층과 집을 바꿔주려고 애쓴다. 그것이 가장 큰 효도다.

평양의 실내복은 특수하다. 외출복을 벗어놓고 바깥에서보다 더 많이 껴입거나 체온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옷을 만들어 입게 된다. 평양의 아파트는 대체로 온수를 이용해 난방을 하는 시스템이지만 전기가 끊어지면 하루종일 온기를 찾기 어렵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앞단추만 채우면 하나로 연결된 방한복을 만들어 입기도 한다. 수완이 좋은 사람들은 양계장(닭공장)에서 닭털을 구해다가 누비이불을 만들기도 한다.

이웃간에 상부상조하는 문화는 일반화돼 있다. ‘교차정전’이라고 하면 2시간마다 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전기를 주고, 다른쪽은 끊는 식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을 이른다. 그러면 아이들은 집을 옮겨가며 TV를 보러 다닌다. 교차정전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 내려가는 소리, 어머니들이 욕지거리를 하며 말리는 소리가 왁자하게 들린다.

전기가 없이 새벽밥을 짓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양초, 카바이트 등, 석유 등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모두 가격이 너무 비싸다.

북한돈 수만원을 호가하는 탱크배터리(땅크바떠리)를 사서 아예 전등은 물론이고 TV까지 보는 부자들도 있다. 중앙당, 호위원, 안전성 아파트는 언제나 불빛이 새나오는데 평양사람들은 그곳을 천국인 양 바라본다. 만수대 동상, 대동강변의 주체사상탑, 만수무강축원구호문의 불빛은 365일 꺼지지 않는데 북한 일반가정의 전기사정은 더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평양을 한 발 벗어난 지방은 더욱 말할 것이 없다.

/이교관 기자 haed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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