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男南女 커플 아내 김경화씨

작년 10월 신혼둥지를 튼 탈북인 탁영철(30ㆍ 인하대 기계공학과 4년)씨와 김경화(29)씨는 ‘북남남녀(北男南女)’ 커플이다. 이들의 결혼식은 이종찬 전 국정원장(당시 국민회의 부총재)이 주례를 서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내외가 탁씨의 부모 대신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탁씨 부부는 어느덧 딸 수림(1)을 얻어 결혼생활의 안정을 맛보고 있다.유치원 교사를 했던 김씨의 살림집은 오밀조밀한 장식으로 예쁘고 정갈했다. 그러나 정작 집안을 꾸미는 일이나 큼직한 물건을 장만하는 일은 남편 탁씨가 맡는다.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데는 꽤 세련된 감각을 발휘하는 탁씨도 옷을 살 때는 아무래도 이쪽 취향은 아닌 것 같단다.

"백화점에 가도 꼭 중년부인 매장으로 데리고 가요. 펑퍼짐한 옷을 골라주고는 흐뭇해 하죠"라며 남편 타박이다.

살다 보면 남한 남자와 다를 바 없지만 외래어를 잘 못 알아들을 때면 문득 차이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바캉스를 가자고 했더니 무슨 말이냐고 하더군요. 텐트를 갖고 가자고 할 때는 알더니 코펠도 가져가야 한다고 했더니 그게 뭐냐고 또 물어요." 남편이 북한사람이어서 좋은 점은 처가에 더할 나위 없이 잘하는 것. 명절이나 방학이면 김씨의 친정인 강원도 삼척에 내려가 농사일도 척척 해낸다. 동네 사람들이 북에서 온 '탁서방'을 불러 이것저것 호기심을 나타내면 일장 강의도 마다 않는다. 그러나 처제, 처남에게 북한식으로 이름을 불러대다가 혼쭐이 나기도 한다.

"가정에 대한 애착이 참 커요. 아이를 낳았을 때도 남편이 미역국 끓이고 기저귀 빨면서 혼자 1주일을 보살펴 주었어요. 북한 남자도 괜찮아요. 남한의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좀 가부장적인 면이 있지만 그만큼 가정적인 것 같아요."

그러나 신세대 남한 여성들은 적응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여가생활에서 취향이 다를 수 있어요. 분위기 있는 데서 한 잔 하는 것 같은 건 생각하기 어려워요. 대신 여행은 참 좋아해요”

김씨는 남편이 쓸쓸해 할까봐 북한 얘기는 잘 묻지 않는다. 같이 탈북하다 붙잡혀 간 동생 생각으로 우울해 질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남편은 요즘 남북관계 진전에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라고 한다.

/김미영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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