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보다 발각되면 '패가망신'

북한에서 자본주의 국가 비디오를 보다가 발각되면 인생이 끝장이다.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정치범에 준하는 처벌을 받는다. 음란 비디오나 잡지일 경우는 목숨을 잃을 각오까지 해야 한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인생을 걸고서라도 몰래 외국 영화를 보고, 포르노 비디오를 즐긴다. 당국이 총력을 기울여 단속하지만 은밀한 비디오 열풍은 그칠 줄 모른다.

최근 북한에서 가장 많이 보는 비디오는 성룡 이소룡 주윤발 홍금보 등이 출연하는 홍콩 액션영화들이다. 이 배우들의 이름은 북한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성룡 주연의 ‘폴리스 스토리’가 인기다. 미국 영화도 은밀히 나돌고 있는데 실베스터 스텔론과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나오는 액션영화들이 가장 인기를 끈다. 권투 영화 ‘록키’ 등이 많이 나돈다.

성룡·주윤발 등 출연 홍콩 액션 인기..
미국이나 홍콩 영화 비디오는 주로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간다. 남한 비디오는 단속과 처벌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구하기가 어렵고 거의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재일교포들 사이에는 일본의 친척을 통해 일본비디오가 들어 오지만 많이 나돌지는 않는다.

북한 젊은이들은 자본주의 사회 영화를 보면서 북한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짜릿하고 재미있는 장면들, 특히 남녀간의 애정 장면이나 자본주의 나라의 거리와 생활모습 등에 흥미와 호기심을 갖는다. 이때문에 이런 영화를 보다 발각된 사람은 인민보안성(경찰)이 아니라 정치범을 다루는 국가안전보위부로 넘겨지게 된다. 액션 영화를 보다 걸려도 짧게는 100일, 길게는 1년 정도 탄광이나 공장 등에서 심한 노동을 하는 ‘혁명화 교육’을 받아야 한다.

북한에는 텔레비전 보급률이 낮은데다 녹화기(비디오레코더)를 가진 집은 더욱 드물기 때문에 비디오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일부 계층에 국한돼 있지만, 평양의 젊은이들은 친한 친구끼리 녹화기가 있는 집에서 은밀히 감상 시간을 갖는다.

단속이 심한 만큼 비디오테이프의 가격은 부른는 게 값이다. 음란비디오는 미화 300 달러를 호가한다. 이것은 다시 수십, 수백 개로 복사돼 퍼져 나가는데 화질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비디오테이프의 유통은 아주 가까운 사람끼리만 극비리에 이루어진다.

1980년대에는 외교관이나 재일교포들을 통해 유입됐지만 요즘은 중국을 오가는 장사꾼을 통해서도 비교적 쉽게 들어가고 있다. 엄격한 통제 때문에 원가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가격을 부르지만 수요자가 많아 위험해도 수지맞는 장사가 된다.

과거에는 남한의 노래 테이프가 주요 단속 대상이었지만 노래는 이미 유행할 만큼 유행해 버려 요즘은 비디오 단속에 당국이 주력하고 있다. 평양외국어학원같은 고위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수시로 불시에 소지품 검사를 실시한다.

음란물 본 학장 아들 온가족 추방도
1990년대 초 ‘평양외국어대학 비디오사건’은 평양에서 유명한 사건이었다. 이 대학 학장 아들이 포함된 몇 명이 음란비디오를 보다가 적발돼 전체학생 앞에서 공개비판을 받고 본인들은 물론 대학학장을 비롯한 가족까지 모두 평양에서 추방됐다.

사정이 이러니 비디오테이프를 집 바깥에 땅을 파고 묻어놓기도 한다. 평양시내 아파트경비원들은 청년들이 무리 지어 어느집에 들어가면 우선 신고하고 본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보안원들이 아파트 전체의 전기를 끄고 의심되는 집에 들이닥쳐 단속한 사례도 있다. 전기를 꺼버리면 비디오테이프를 녹화기에서 꺼낼 수가 없어 꼼짝없이 증거를 잡히게 된다.

1990년대 초에 생겨난 ‘6.4 그루빠(그룹)’는 암행어사식 단속 조직이다. 김정일의 신임을 받는 정치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이들은 평양시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파견돼 전주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자본주의 날라리 풍’을 단속한다. 장발, 청바지,외국글자가 새겨진 옷 등과 함께 자본주의 나라의 영상물이 주요 단속 대상이다. 품속에 비디오테이프를 넣고 다니다가 이들에게 걸린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