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중 개설 예정인 조선일보 인터넷 ‘실향 기록관’에는 많은 실향민들의 절절한 사연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NK리포트는 이중 한 편씩을 요약해 소개합니다./편집자

"여보, 꼭 살아서 만나야 하오"
기록인:고창덕(80ㆍ서울 서초구 반포4동)
출생지: 함남 영흥군 고령면 백안리 320번지
이산가족: 아버지 고성두(133), 어머니 김룡자(117), 처 강한남(76), 딸 고화성(53), 형 고창봉(104), 조카 고수록(77) 등

반세기가 넘도록 가족과 친척을 못 만나고, 고향을 못 가 보는 이 한을 무어라고 표현하겠는가. 내 나이 80이 돼가는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자나깨나 보고싶은 내 가족과 친척들 고향소식도 못 듣고 죽을 것 같은 허무한 마음이다.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후일에 ‘실향기록관’에서라도 만날까 하는 희망에 이 글을 쓴다.

난리통이라 날짜도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2~3개월만 피신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믿고 가족을 잠시 친척집에 피신시키고 헤어진 것이 50년이 넘을 줄이야, 이 쓰라린 마음 누가 알리요?

여보 미안하오.

미안하다는 말을 할 자격도 못 되는 것 같소. 살아 있는지나 모르겠소. 딸 화성이 소식도 모르고 알아 볼 길도 없이 이렇게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소. 꼭 살아서 만나야 하오. 나는 너무나 잘못이 많았소. 그 전장터에 당신 혼자 두고 나만 혼자 왔소. 그러나 언제나 잊어 본 적은 없소.

해마다 설날과 추석때는 휴전선 너머 북을 바라보는 곳, 망향제단이 있는 곳에 가서 부모님께 제사도 지내고 가족과 친척들을 그려 보오. 이곳 아이들도 명절이면 내가 쓸쓸해 한다고 가족전체가 일년에 두 번은 꼭 간답니다. 고마운 마음씨들이야.

조카 수록아.

자네가 50년도에 보낸 편지가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였어. 형님은 살아 계시는지. 연세가 많으셔서 돌아 가셨겠지. 자네가 할아버지 할머니 묘지들은 잘 관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북도 많이 변했겠는데 묘지를 잊어버렸을까봐 걱정된다. 그때 공동묘지였는데 비석이 없으니 표적이 되는 큰 돌이라도 묘에 묻어서 표시 못한 것이 한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닿지도 않을 이 편지는 안타깝기만 하구나. 꼭 살아야 한다. 할말이 너무나 많다. 만나야 해.

지금의 이산가족상봉은 잘못됐어. 우선 생사확인을 하고 소식을 주고 받은 다음에 왕래를 해야지. 우리 나이가 오늘 내일을 모르는데….

마침 조선일보에서 ‘실향기록관’을 만들기에 서툰 글이라도 기록해 둔다. 후일 아이들 대(代)에서라도 만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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