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북한에서는 공로를 세운 장애인들과 결혼한 사례들을 아름다운 소행으로 소개하고 있다. 사진은 아내의 도움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한 장애인의 모습.
북한의 장애인들에 대한 대우는 장애가 된 이유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국가적인 사업에 동원됐다가 불구가 된 경우는 상당한 배려를 받지만 선천성 장애인들은 적잖은 차별에 시달려야 한다.

공로자- 직장 그만둬도 월급,식량 지급
선천성- 강제 불임수술, 외지 격리수용

공로가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평양이나 지방의 각 도시마다 영예군인공장이 있다. 비교적 대우와 작업조건이 좋고, 주로 생활필수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생활에 직접적인 보탬이 되기도 한다. 영예군인공장의 장애인들은 직장을 그만두어도 직장을 다닐 때와 똑같이 월급과 식량을 받을 만한 공로를 세운 사람들이 많다. 또 이런 장애인과 결혼하는 사람들을 언론에서도 ‘미덕’으로 크게 보도한다.

그러나 일반 장애인들은 처지가 다르다. 1970년대부터 평양에서는 많은 장애인들이 지방으로 쫓겨났다. 당의 요구를 본인들이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강제 퇴거였다. 이들은 본인이 희망하거나 당이 지정한 지방의 도시로 갔다. 영예군인들이나 국가에 공로를 세운 장애인들은 평양에 남았다. 장애인 소개사업은 90년대까지 계속됐다. 지방으로 쫒겨나지 않은 장애인들도 가급적 큰 도로변에서 도로 안쪽 집들과 바꾸어 살게 했다. 때문에 신체적으로 눈에 띄는 장애인들은 평양거리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일반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비교적 쉬운 노동을 하는 경노동 직장이 각 구역(대도시의 구)과 군마다 마련돼 있다. 신체장애인은 물론 만성질병에 시달리는 쇠약한 사람들도 이 직장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의무적으로 동원되는 어려운 공사에도 제외된다. 작업동원에 빠지고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의사와 짜고 경노동 직장에 해당되는 진단서를 발급 받기도 한다. 경제형편이 괜찮을 때는 경노동 직장에 보약도 공급해 주고, 우선 진찰권을 주는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런 혜택도 거의 사라졌다.

선천성 장애인들에 대한 당국의 정책은 인권 유린의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양강도 김형직(옛 후창)군 연하리에는 난장이 집단수용소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출신의 한 탈북인은 “연하리는 북한에서 가장 깊은 산골짜기이며, 이곳에 수용된 난장이들은 외부 여행이 전면 금지된 채 살아간다”면서 “이곳은 인민보안원성에서 통제 및 관리를 맡고 있으며, 강제 불임수술까지 자행돼 그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나환자들도 평안북도의 외딴섬에 철저히 격리 수용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문헌이나 발표문들을 보면 장애인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거의 없다. 주민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생활까지 언급하고 있는 이들 교시에서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든 사실이 북한내 장애인들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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