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북한 당국)는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5개월이 지난 지금 북한의 식량사정이나 전력사정이 좋아졌느냐는 질문에 대해 탈북인 안철(가명·28)씨가 내놓은 답변이다.

안씨는 지난달 초 함북 회령의 장마당(농민시장)에 잠입, 현장을 무비카메라로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그가 촬영한 이 비디오 테이프는 20일 한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됐다.

안씨는 98년 9월 같은 장소의 장마당 풍경을 비디오 테이프에 담아 공개한 적이 있어 그의 테이프는 2년 사이 북한의 변화를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번 테이프에 담긴 장마당의 풍경은 2년 전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미세한 변화는 엿볼 수 있다.

장마당은 도시 외곽에 노점상이 밀집된 모습이다. 붐빌 정도는 아니지만 오가는 사람도 꽤 된다. 남녀노소 두루 섞여 있다. 젖먹이와 겨우 걸을 정도의 아이를 데리고 뭔가를 팔겠다고 나선 젊은 아주머니, 정복을 입었지만 어린 티를 못 벗은 군인의 모습도 보인다. 북한이 지난 4월 인민보안성(경찰) 명의로 포고령을 내려 장마당 출입자를 55세 이상 부녀자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사진설명 : ◇형형색색의 중국 물건이 즐비하게 널려있다.
풍부하지는 않지만 상품의 종류도 비교적 다양해졌다. 쌀밥, 강냉이국수, 김치를 비롯해 감자 야채 의류 신발 생선 선글라스 등 잡화점을 보는 듯하다. "고양이 뿔을 빼고는 다 있다"는 이야기를 실감케 한다. 2년 전에 비하면 특히 의복류가 많아졌고 색상도 밝아졌다. 눈어림이지만 품질도 전에 비해 좋아 보인다.


사진설명 : ◇드문드문 보이는 꽃제비.중국산 비닐이 이들의 동냥그릇이다.
식량난으로 부모를 잃고 거리를 배회하는 '꽃제비'들도 여전히 눈에 띈다. 수적으로는 줄어들었지만 남루한 차림에 병색이 짙은 모습은 그대로다. 꽃제비에게는 필수품인 비닐주머니가 2년 전에 비해 좋아진 것도 눈에 띈다. 비닐주머니는 이들에게 밥그릇, 물그릇을 대신한다.

곡물을 담았음직한 마대에 선명하게 찍힌 '粉(분)'자가 이채롭다. 국제구호단체나 외국에서 지원한 물품이 장마당에서 유통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중국에서 지원한 밀가루 포대가 아닌가 추정된다.

안씨가 찍은 테이프는 일면이기는 하나 비교적 최근의 북한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올해 노동당 창건55주년(10.10)을 기해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끝났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안씨는 "지난 4∼5년 동안은 고통에 찬 생활의 연장인데 인민의 생활은 변화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달라졌다고 하면 사람들의 사상이라면서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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