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거주-노동면제 혜택...해외출장 기회까지


사진설명 : ◇김일성대학 학생들이 교정을 나서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에 종교학과가 생겼다."

북한 전역의 대학 진학 희망자들에게 이 소식이 급속히 퍼져 나간 것은 1989년이었다. 인민고등중학교 졸업반 학생들의 눈과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소식이었다.

북한최고의 명문대학으로 체제 유지의 핵심 엘리트를 키워내는 김일성종합대학에, 가장 반체제적 요소로 간주되는 종교를 가르치는 학과가 생기다니….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종교학과 신설 이유를 북한 학생들이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종교를 신앙 차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외국 종교 단체들과의 접촉과 교류를 위한 요원을 양성하기 위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종교학과의 인기는 단번에 최고조에 달했다. 북한에서 최고 인기 직종은 해외 관련 분야이고, 종교학과를 졸업하면 해외 활동이 보장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일성대학을 다녔던 최동철(33)씨는 실제로 종교학과가 생긴 것은 이보다 2년 전인 1987년이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비밀리에 만들어져 일반 학생들은 그런 학과가 있는 줄도 몰랐고, 정원도 5명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 개최를 계기로 북한의 대외활동이 활발해지고, 종교적 색채를 가진 외국 단체들의 북한 방문이 잇달았지만 이들을 상대할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자, 김일성종합대학의 종교학과를 공개하고 정원도 20여 명으로 늘리게 됐다. 종교학과 신설은 북한이 형식적으로나마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음을 선전할 수 있는 소재가 되기도 했다.

종교학과는 성격상 철학부에 소속돼야 하지만 처음부터 역사학부 안에 만들어졌다. 김일성대학 경제학부 교수를 지낸 조명철(42)씨는 그 이유에 대해 "해방 후 종교를 탄압해 온 북한으로서는 종교학과 학생들을 가르칠만한 전문가를 확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종교를 알만한 나이 지긋한 교수들이 역사학부에 많았고, 역사학에 종교의 역사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종교학과가 역사학부 안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학과 학생들은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의 교리와 종교 의식을 주로 배운다. 수업 교재는 학교에서 만든 것만 사용하며, 성경이나 불경 등은 수업 중에도 볼 수가 없고 대학 도서관의 '비공개 열람실'에서만 접근이 가능하다고 한다.

종교학과 학생들은 졸업 후 노동당의 외곽 정당인 사회민주당이나 천도교청우당, 종교 관련 단체인 불교도연맹, 카톨릭교협회 등이나 대남 관련 부서에 집중 배치돼 대외 업무를 주로 맡게 된다. 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평양에 거주하며, 육체노동에서 해방되고, 게다가 해외 여행의 기회까지 주어지기 때문에 종교학과의 인기는 갈수록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대학의 어떤 학과에라도 입학한다는 것은 북한의 젊은이들에게는 대단한 특권이다. 공부만 잘 해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앙과 지방의 당간부 자녀들에 한해 김일성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정원수가 이미 정해져 있으며, 그 이외에 출신성분이 좋은 집안에 한해 공부를 뛰어나게 잘 하는 학생들이 선발된다. 종교학과의 경우 집안 배경이 좋아야 할 뿐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틀림없는 학생들이 선발된다.

대외 선전을 위한 평양의 봉수교회나 장충성당 등에서 목사나 신부로 일하는 사람들은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 출신들이 아니라 별도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과는 김정일 위원장이 졸업한 경제학부 의 정치경제학과이다. 김 위원장이 졸업한 학부라는 이유만으로 경제학부는 모든 행사 등에서 가장 우대 받으며, 졸업생들은 거의 모두 당간부로 발탁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평양 거주와 해외 여행 기회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의 인기학과 변화는 북한 젊은이들의 의식 변화를 읽을 수 있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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