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5년 동안 북한이 핵무기 개발용 고폭(高爆) 실험을 70여 차례나 실시했으며, 이를 한국정부도 알고 있었다는 고영구 국정원장의 국회 보고에 국민들은 배신감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휴지조각처럼 취급했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지금 국민들이 참을 수 없는 건 북한의 핵도발을 포착하고도 5년 동안이나 이를 덮어둔 채 ‘햇볕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몰래 북한에 현금을 갖다바친 한국정부의 태도다. 솔직히 국민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완전히 저버린 이런 정부에 어떻게 나라의 안보를 맡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기까지 하다.

왜 우리가 북한과 대화하고 북한을 돕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에 뒷돈을 대준 격인 햇볕정책은 바로 이 대북(對北) 대화의 대원칙을 짓밟아버린 것이다.

어떻게 한반도 전체를 핵재앙에 빠뜨릴 고폭 실험이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남북 정상회담에 매달리고, ‘퍼주기’라는 비난 속에서 대북 지원에 열을 올릴 수 있단 말인가.

고영구 원장의 보고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는 출범 초기인 98년 4월 이미 북한의 고폭 실험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5년 동안 무려 70여 번의 고폭 실험이 있었지만, 한국정부 차원의 대책은 아무 것도 세워진 것이 없다.

여기서 한번 더 혀를 찰 일은 이런 정부와, 그 정부와 호흡을 맞춰온 어용(御用) 언론들의 그동안 행적이다. 그들은 지난 5년 동안 국내외 언론이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면, 평화무드에 재를 뿌린다는 식으로 ‘색깔공세’를 펼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고 원장의 보고로 북한의 핵도발이 사실로 확인된 지금, 그들은 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 장관급회담에서부터라도 당장 햇볕정책의 잘못된 유산(遺産)과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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