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200년이 조금 넘은 미국을 받쳐온 두 기둥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다. 냉전(랭전)의 한 축이던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 ‘팍스 아메리카’는 더 확고해졌고, 인권을 국제외교나 통상에 늘 잣대 겸 무기로 활용해왔다. 요즘도 클린턴 행정부는 필요할 때마다 중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곤 한다. ▶이런 미국의 국무장관이 인권사각지대로 알려진 북한으로 날아갔다. 그는 김정일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 오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위원장의 손을 잡고 환히 웃는 장면에 이르면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미국을 너무 잘 몰라서일까, 아니면 미국문화에 중독되어서일까. 조간신문에 실린 “잘해봅시다”라며 악수하는 사진은 헷갈리면서도 흥미롭다. ▶국제정치에는 물론 영원한 적과 동지도 없다고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국가이익만 존재하는 냉혹한 무대라는 것도 체감해 왔다. 하지만 바로 엊그제까지 강경한 언어로 상대방을 비난하던 바로 그들이었다. 미국은 북한을 ‘불량국가’라며 국가원수격인 김영남의 몸수색을 했다. 북한을 ‘테러국가’로 묶는 데 앞장선 것도 미국이다. ▶올브라이트는 밀로셰비치 유고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몰아붙이며 “그를 헤이그로 데려와 전범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인물이다. 기본인권이 캄캄한 북한에 가서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라고 한 것은 아무리 외교적 수사라 해도 지극히 여성화된 발언처럼 들린다. ▶북한과 미국이 적대감을 풀고 수교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철천지 원쑤’와 ‘무뢰한’으로부터 시작하자면 어딘가 중간정거장이 있을 법한데 그냥 막바로 종착역으로 가는 것 같다. 하긴 오늘의 ‘아름다움’도 곧바로 내일의 ‘추함’으로 표변하는 것이 국제사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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