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興鎬(한양대 교수, 중국정치)

노무현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베이징 정상회담은 북핵문제로 인한 한반도 주변 정세의 불안과 그 해법 마련을 위한 당사국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지도자 간 첫 대면이라는 점 때문에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한국은 북핵문제의 실질적 당사자이며 중국은 북·미 간의 대립을 조정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그렇다면 베이징 정상회담은 무엇을 남겼는가?

한·중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와 주요 의제를 대체로 신지도부 간의 신뢰 증진, 북핵문제 등 한반도 안보현안에 대한 공조 강화, 가히 폭발적으로 증대된 교류협력의 제도적 정비와 새로운 활로 모색 등으로 집약했다. 물론 우리와 중국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고 각 의제의 중요성에 대한 판단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인식의 차이가 실제 정책상의 차이로 나타나며 결국은 양국 간 협력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정상회담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타난 미묘한 차이와 그 함의(含意)를 읽어내야 하는 이유다.

우선 신지도부 간 신뢰 증진과 관련된 성과를 지적할 수 있다. 특히 기존의 중국 지도자와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의 21세기형 최고 지도자로 부상한 후진타오 주석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다. 또한 이를 통한 분야별 실무지도자 간의 연계 구축은 양국관계의 내실 있는 발전에 필수적이다.

물론 한 번의 만남에 과분한 기대를 할 수 없고, 후 주석을 포함한 중국지도부의 부드러운 미소와 예우를 확대해석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각급 지도자들의 교류를 정례화함으로써 일회성 만남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공조 강화는 이번 회담의 핵심 현안이자 가장 민감한 부분이었다. 회담 전 평화적 해결을 위한 상호협력의 의례적인 언급 이외에 별다른 묘안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역내 평화의 중요성을 역설해 온 양국 정상의 만남에 은근히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과는 역시 기존의 논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후 주석은 한반도의 평화 유지, 비핵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기존 원칙을 재천명하고 그 연장선에서 양국 간 협력을 언급했을 뿐이다. 논의의 형식과 관련, 한국은 어떻게든 ‘다자’의 색채를 가미하고자 했지만, 중국은 ‘당사자’ 이상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

이는 중국이 내심 다자회담의 현실적 필요를 인정하더라도 굳이 노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이를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사안의 성격상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지만 논의의 획기적 진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의 복잡성과 우리의 한계를 재확인했을 뿐이다.

그 밖에 분야별 교류협력의 질적 도약을 위한 계기의 마련 여부 역시 회담의 실질적인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다. 특히 경제, 과학기술,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는 향후 양국관계 발전의 성패를 결정짓게 될 요인이다.

다행히 양국 정상은 교류의 진일보 확대를 위한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고 실제로 사법적 공조, 과학기술협력 등의 분야에서는 구체적 성과를 얻었다. 이와 함께 청소년 교류를 포함한 교육·문화 분야의 교류 확대 합의도 중요한 성과로 지적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베이징 정상회담은 한·중 관계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아직은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의 양면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호혜협력의 무한한 확대를 자신하는 분야가 있는 반면 원론적 수준의 협력을 모호하게 언급할 수밖에 없는 분야가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양자의 괴리를 극복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면적 협력관계’에서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했다고 하지만, 그에 걸맞은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한 의미 없는 구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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