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택(고려대교수·국제정치)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미국과 일본을 거쳐 이제 중국에 이르게 되었다. 앞선 두 차례 회담처럼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 역시 현재 급물살을 타고 있는 북핵 문제일 것이다.

북한은 지난 4월 베이징 3자회담에서 핵보유 사실을 흘리더니 계속해서 이를 슬쩍 언급하면서 새로운 위협 카드로 쓸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만약 북한의 핵보유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지난 몇 년 동안 북한 핵문제의 본질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북한의 고폭실험의 증거까지 밝히고 있는 터다.

지금까지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인식과 대응은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너무 안이하다 못해 무심한 듯하다. 어떤 고도의 전략적 차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우리 정부는 미적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엔 안보리에서의 북핵 논의도 거부하고, 한·미·일 3자 협의에서도 그 대처에 가장 소극적이다. 뜬금없이 벌어지는 남·북 간, 한·미·일 간 협상을 보면 전략적 마인드는 있는지, 정부부처 간의 심도있는 정책조율은 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미 북한에 다양한 압력을 넣기 위해 소위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의 실행을 긴밀하게 협의하는 등 전방위적 압박에 들어가고 있다. 현실은 이러한데 정작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5자 회담의 개최 여부는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경수로 사업도 실질적으로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변하고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따라서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는 앞으로의 상황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원론적 수준에서 ‘북핵 불용’ ‘평화적 해결’ 원칙이나 밝히고 끝나는 정상회담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추가적 조치’에 대해 합의해 놓고도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이 부분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게 우리다.

더구나 북핵 문제에 대한 그간의 중국 태도를 볼 때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몇 걸음이나 뒤로 갈 것인지 사실 걱정이다. 이미 국제사회가 대북압박에 대해 실질적으로 논의하는 마당에 기존의 합의에서 몇 걸음씩 뒤로 물러서서 두루뭉술하게 원론적 입장만을 밝히게 되면 그야말로 정상회담의 의의는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국제 공조에도 문제가 생긴다.

우리 나름의 대북 로드맵(road map)이 있느냐,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중국을 진지하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중국의 그간의 건설적 역할을 충분히 평가하면서도 대북문제의 당사자는 역시 우리라는 입장을 주지시키고 새로운 상황 변화를 인식시켜야 상호 간의 온도 차를 극소화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최대 실책은 바로 북한 핵문제에 대한 우리의 당사자적 지위를 실질적으로 버렸다는 데 있다. 그 여파로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은 이미 흘러간 얘기가 되어버렸고, 다자 해결도 모자라서 이제 우리가 거기에 끼기도 힘든 형편이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5자 회담은 시급한 현안 중의 하나이다. 지난 베이징의 3자회담은 내용은 차지하고라도 형식면에서도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북한이 보기에 ‘너희는 남북경협 같은데 돈이나 대고 핵문제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빠지라’는 그런 3자회담은 안 된다. 더구나 거기서 북한이 내놓았다는 ‘새롭고 대담한 제안’은 유감스럽게도 전혀 새롭지도 않고 대담하지도 않은, 결국 핵 옵션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여 3자회담을 한시적으로나마 계속하려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것들이 해결되어야 한·중 간에도 의미있는 협조의 새 장이 열린다. 그런 바탕에서의 중국 역할이라야 순기능적이다. 북한 핵은 중국도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이다. 어렵더라도 우리가 냉엄한 현실인식 속에 원칙과 전략을 세우고 설득해서 한·중이 같은 국제적 눈높이에서 함께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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