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평양에서 열기로 한 제2차 남북경협 실무접촉이 무기 연기되었다. 북한은 지난 14일까지 우리 대표단의 방북 경로와 구체적인 회담일정을 알려달라는 우리측 요구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다가 회담 전날에야 ‘내부사정’으로 회담이 어렵다고 통보해 왔다. 북한의 이런 일방적인 행동은 최근들어 다반사가 되고 있다. 오는 11월 2일부터 4일까지 실시키로 한 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 후보명단 200명 가운데 생사확인된 사람의 명단을 지난 13일 교환하기로 했으나 북한은 지금까지 후보명단조차 받아가지 않고 있다. 후보명단은 지난 2일 교환할 예정이었으나 북한측이 상부의 연락이 없다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했다. 또 이산가족 제도화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100명의 생사확인을 우선 실시키로 했으나 명단을 받아간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현재까지 아무런 통보가 없으며, 경의선 복원을 위한 군 당국간 실무접촉을 우리측이 제의한 지 오래이나 아직껏 아무런 연락이 없다. 남북간 신문교환도 시행한지 1주일도 안 돼 북한이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정부는 노동당 창당기념행사 등 북한내부 행사일정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우리가 보기에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남북회담에 난기류(난기류)를 조성하는 것 같다. 북한은 당초 남북회담에서 얻고자 한 비전향 장기수 송환과 식량지원을 확보한 상태에서 회담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앞으로의 회담은 자신들이 내켜하지 않는 ‘제도화’에 관한 논의가 주류를 이룰 것이기 때문에 쉽게 응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북한이 1차 경협 실무자 접촉에서 식량 60만t을 확보한 후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 방지협정 등 경협의 제도화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2차 실무접촉을 무기한 연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며,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화를 회피하기 위해 시범적 생사확인과 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에도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경의선 복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북한의 그러한 내부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최근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함에 따라 남북회담의 소강상태는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기본정책이 남북관계보다 대미관계 개선에 주안점이 있는데다 이달 중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문에 이어 클린턴 대통령의 연내 북한방문 가능성도 높아 북한은 일단 거기에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한을 ‘미국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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