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과

북한이 작년 7월 1일 경제개혁을 추진한 지 1년이 됐다. ‘7·1 경제관리개선조치’로 명명된 경제실험은 최근 ‘개선’이라는 소극적인 표현 대신 북한이 그간 기피하던 ‘개혁’이란 용어까지 구사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북한 당국은 7·1조치가 북한 사회주의의 기초를 구축한 ‘토지개혁’에 비유될 만큼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선전하였다.

이런 비유는 현실로 나타나면서 57년 동안 사회주의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삶을 바닥부터 변화시키고 있다. 우선 주민들이 ‘돈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물가가 평균 18배 올랐기 때문에 직종별로 차등 인상된 임금으로 합리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경제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주민들은 이제 매일 정치학습 이외에 사적으로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경제 학습을 하고 있다. 종전의 식비는 월급의 3.5%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최소 30% 이상 급증, ‘먹는 문제’ 해결이 국가의 손을 떠나고 있다. 다음달부터는 직장 퇴근 후의 부업을 공식적으로 인정, 가계 재정을 전적으로 개인이 책임지게 된다.

둘째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는 시장(市場)이 평양을 비롯, 전국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종래 계획경제를 보완하는 농민시장이 아니라 농산품 이외에 공산품까지 공급하는 종합시장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국정가격과 농민시장의 가격차를 줄이고 종래의 배급제 상품 배분을 시장에 맡김으로써 시장의 효율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국가계획경제와 사경제를 병존시키는 조치로서 시장경제로 가는 토대를 조성하고 있다.

셋째, 기업소와 국가 재정의 건전화가 시도되고 있다. 당국은 신회계법 발표를 계기로 기업소의 부채를 탕감한 후 새롭게 시작, 흑자를 내는 기업은 상여금을 받으나 적자 기업은 지배인이 책임을 지는 등 기업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더 이상 분배의 평균주의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명실상부한 독립채산제가 도입됨으로써 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가 축소되고 있다.

곡물가격을 농민시장 가격 수준으로 인상, 수십년간 북한 당국을 곤란하게 한 양곡 적자가 해소되고 있다. 사실상 의식주의 배급제는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더 이상 인민을 책임지지 못하는 정부의 한계를 인정하고, 정부 재정이 경제 건설에 투입할 여력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개혁은 명암이 있다. 경제주체인 가계, 기업 및 정부가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대담한 변화는 고통을 수반하고 있다. 중국이 개혁 개방 당시 10년에 걸쳐 물가를 인상한 데 비해 북한은 일시에 물가를 올림으로써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다. 물자 공급이 부족한 가운데 급속한 통화량 팽창은 물가 인상으로 이어져 경제주체들의 경제회복 노력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인플레는 부정적 측면이 강하지만 사회주의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플레는 역설적으로 긍정적 측면이 있다. 인플레 발생은 가격변화를 통해 시장개혁이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가격 결정권이 국가 통제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경제에 대한 국가의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소유제 변화 개혁을 제외하고는 시장경제의 전반적인 작동 원리가 도입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당국은 7·1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에 실리를 추가하는 ‘실리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현재까지 북한의 경제개혁은 실리사회주의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당국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계획경제의 틀이 약화되면서 당국의 의도와 상관없이 시장경제 추세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다.

북한의 경제개혁은 인플레 속에서도 주민들의 노동의욕을 고취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앞으로 신속한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외국자본 도입이 불가피하다. 지난 5월1일부터 발행하고 있는 인민공채 등 내부자원 조달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북핵문제 해결 등 외부 환경을 호전시키는 일이야말로 북한이 경제를 조기에 회생시키는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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