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은 독일통일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가 새삼 이 날을 되새기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독일통일의 길을 밟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독일사람들은 1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독일통일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정치, 경제, 사회적 통합으로 통일 당시의 동서독간의 격차는 크게 줄고 사회기반시설, 환경문제, 임금수준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심리적 통일은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때마침 한국을 방문한 독일 사민당 원내총무 페터 슈트류크씨는 “독일내 완전한 평화는 다음 세대에나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독일통일은 동독주민들의 선택에 의해 달성된 것이다. 동서독 정상회담 이후 동독주민들의 대(대)정부 압력이 가중되었고, 이러한 압력이 결국 동독정권을 무너뜨리는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동독주민의 개방·개혁 압력 같은 것을 북한에 기대할 수 없는 우리의 경우는 더욱 통일을 요원하게 느끼게 한다. 더구나 동서독은 통일전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교류와 왕래가 빈번했다. 이산가족간의 서신거래는 물론, 상호방문이 자유로웠으며 동독주민들의 서독 TV시청도 가능했다. 이러한 ‘사전준비’가 있었는데도 심리적 통일이 요원하다는 것은 아무리 같은 민족이라도 가치체계가 다른 체제간의 융합, 다시 말해 동질성 회복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해준다.

분단 반세기 만에 정상회담이 이룩된 우리 사회에는 최근 우려스러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통일에 대한 담론이 중요한 사회이슈가 되고 있고, 일부 성급한 사람들은 통일이 눈앞에 와 있는 것 같이 말하며 ‘신중론자’를 반통일세력으로 매도하는 경향까지 있다. 그리고 무조건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도와주는 것이 통일의 길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나 행위야말로 통일의 걸림돌이며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만 조장시킬 뿐이다.

통일은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폰 모어 신임 주한독일대사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견해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는 독일의 북한 수교조건을 첫째 남북대화, 둘째 북한내 인권상황 개선, 셋째는 핵 및 미사일문제 해결을 꼽았다. 남북대화는 상당히 진전되었으나 북한내 인권개선은 미흡하며 핵과 미사일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과 수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논지는 우리의 대북정책 나아가 통일정책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산가족의 상호방문, 북한주민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언론자유 등 기본적 인권상황 개선없이는 상호간 실질적인 교류가 이룩될 수 없으며 실질적인 교류없이는 상호 동질성 확대는 요원하다. 폰 모어 대사는 아무리 남북간에 철도와 도로가 연결된다 해도 북한주민들의 이동의 자유가 없다면 그 철도를 누가 탈 것인가 하고 반문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정권과의 관계개선에만 편향돼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것도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북한주민들의 인권개선과 전쟁방지를 위한 조치없는 북한정권과의 관계개선 노력은 자칫하면 북한정권만 살찌우고 북한주민을 더욱 도탄에 빠뜨릴 우려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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