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주에서는 분단 후 첫 국방장관 회담이 열리고 있으나 이것도 우리가 필요로하는 구체적인 알맹이보다 모양만을 갖춘 회담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25일 첫날 회담에서 우리 측은 군사 직통전화 설치,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훈련 상호통보, 국방장관 회담 정례화를 제기했다. 북한은 예상대로 경의선 복원과 도로개설에 따른 군사문제로 회담을 한정하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양측은 철도복원과 도로개설에 따른 실무위원회 구성에는 쉽게 합의했으나, 우리 측이 제기한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못한 셈이다. 다만 6·15 공동선언 이행을 군사적으로 보장해나간다는 데 원칙적으로 인식을 같이하고, 다음 국방장관 회담을 북한지역에서 열기로 의견을 접근시켰으나 이것이 긴장완화나 신뢰구축 회담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정상회담 후 지금까지 북한의 협상패턴을 보면 회담 자체는 깨지 않되 시간을 끌면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만 챙기는 대신 우리 측이 요구하는 것은 희석시키거나 사실상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산가족 문제의 경우 지난 6월 적십자회담에서 비전향 장기수 송환 즉시 생사확인과 면회소 설치문제를 합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 송환이 이뤄진 지 20여일 만에 열린 금강산 적십자회담에서는 “행정능력이 미비하다” “컴퓨터 1000대만 보내주면 생사확인이 빨라질 수 있다”며 생사확인의 ‘제도화’를 사실상 어렵게 만들었으며, 면회소 설치는 논의조차 못했다.

이번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당초 국방부는 모두 세 차례 회담을 갖는다고 밝혔으나 25일 오후 회담은 웬일인지 취소하고 관광으로 대체했다. 국방장관 회담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철도복원과 도로개설에 따른 지뢰제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실무자들이 협의해도 그만이다. 분단 후 첫 군사수뇌간 회담에서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더욱이나 첨예한 군사적 대치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지금 같은 ‘화해와 협력’은 외화내빈일 뿐 아니라 지극히 ‘불안한 구조’라는 것을 돌아볼 때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는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국방당국자들은 문제제기에 그칠 것이 아니라 북한에 이 점을 분명히 인식시켜 남은 하루 회담에서라도 긴장완화 문제를 논의하도록 해야 하며, 그것이 어렵다면 다음 회담 의제에 이 문제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북한도 긴장완화 없이는 남측 협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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