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6·15 남북정상회담 3주년을 맞아 방송과의 대담 형식을 통해 남북문제에 대한 감회와 견해를 피력할 것이라고 한다. 전직 대통령은 가급적 말을 아끼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우리 풍토지만, 남북정상회담의 한 주역으로서 그것에 관한 소회(所懷)를 밝히는 자리를 갖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휴일 아침 TV 앞에 앉을 국민들의 심정은 느긋하기보다는 아무래도 아슬아슬하다는 쪽일 것 같다. 대북 비밀송금에 대한 특검의 수사 진행상황과 현재의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김 전 대통령의 심기가 편할 리 없을 것으로 여겨지고, 이로 인해서 그의 발언 범위가 어디까지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실현한 전 정권의 핵심인물들이 줄줄이 특검 조사나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고, 이를 통해 정상회담 자체의 의미마저 퇴색하는 듯한 상황을 감내하기 어려운 심정일지도 모른다. 또 갈수록 위기로 치닫고 있는 북핵문제와 이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대응방식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이 일반적인 소회를 밝히는 정도를 넘어 구체적 문제들에 대한 개인적 견해나 입장을 강조하는 데까지 나아갈 경우 나라 안팎에서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가령 특검의 활동 방향에 대한 깊은 언급이나 북핵 문제의 해법에 대해 자신이 담당했던 시기의 방식을 강조하고 나선다면 우리 내부의 논란과 혼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퇴임 후 처음으로 국민 앞에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김 전 대통령이 이 어려운 시기에 국정운영의 풍부한 경험을 가진 국가원로로서 개인이나 정파의 입장을 초월해 나라의 앞날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게 국민들의 심정일 것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