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2차 장관급회담에서 대북 식량지원 문제가 논의된 바 있다. 합의문에는 북측에 식량을 ‘차관으로 제공’하는 문제를 “검토해 추진한다”고 되어 있을 뿐 북측의 구체적 요구나 그에 대한 남측의 입장이나 조건, 그리고 협의과정과 그 결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설명된 것이 없다. 다만 이런 저런 경로로 북측이 100만t의 지원을 요청했다거나, 30년 장기차관 조건으로 제공키로 협의되었다거나 하는 추측성 보도만 난무할 뿐 정부의 공식방침이 어떤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식량지원을 둘러싼 이 같은 불투명성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식량지원은 무상이든 차관형식이든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주식인 쌀이 포함될 경우 그것은 단순한 인도주의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북한이 당장 최악의 기아상태에서 벗어난 지금 특히 그렇다.

우리의 식량사정은 최근 10여년간 계속 나빠지는 추세에 있고, 식량자급 능력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식량수입 부담이 국제수지에 큰 짐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가벼이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의 재정능력이나 국제수지에 큰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 재정은 구조조정 때문에 갈수록 적자가 늘어나고 있고 경상수지도 최근의 무역수지 악화 때문에 급속히 감퇴하고 있다. 따라서 대북 식량지원은 그 인도적 명분은 큰 데 비해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경색된 상황이다.

설령 우리의 형편이 다소 나아진다 해도 식량지원은 가장 중요한 전략적 협상수단의 하나이지 단순한 선심의 대상일 수 없다. 그것은 평화체제 구축과 정치·군사적 협력 또는 이산문제의 진전과 연계하지 않으면 안 될 마지막 수단의 하나가 돼야 한다. 그만큼 식량지원은 우리의 경제와 안보에 치명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량지원은 지금 같은 물밑합의가 아니라 정식으로 논의해 그것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국회의 충분한 토론과 동의를 얻은 뒤에 실행해야 할 사안이지,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선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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