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초청하는 문제를 긍정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바로 한달 전 북측이 이 총재를 ‘민족 반역자’ 등의 극언 속에 격렬히 비난했던 사실 하나만 상기해 봐도 이러한 움직임은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물론 북측은 이 총재에 대한 초청용의를 김정일 위원장의 입을 통해 밝히기는 했지만, 초청의 형식을 비롯해 구체적 내용은 더이상 전해지지 않는다.

이 총재는 두 달 전 회견을 통해 “국익을 위해서는 김정일 위원장도 만날 수 있다”고 공언한 만큼 북측의 초청이 적절한 격식과 내용으로 이뤄진다면 그의 방북 가능성은 꽤 높아 보인다. 원내 제1당 총재로서 그의 방북은 ‘대북정책의 초당적 대처’ 차원 이전에 북한을 보고 그 권력핵심들을 직접 대면해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방북에는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요소 또한 많다. 무엇보다도 오늘의 남북간 상황전개가 북의 진정한 변화인지 전략의 수정인지를 가늠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의 ‘화해와 협력’이 당장 ‘군비축소’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북쪽에서 오라고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간다고 해서 진정한 ‘화해와 협력’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도 이 총재는 자신에 대한 북측의 갑작스런 태도변화의 전후과정을 다시금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그것은 “남쪽 국회에서 야당이 반대하면 대북사업 추진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에 따른 ‘장애물 제거’ 작전의 하나일 수도 있다. 방북을 하더라도 이를 알고 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한 인사들이 북에 다녀오면 ‘북의 실상’에 다 접근한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되고 비판적 발언을 삼가게 되는 저간의 분위기에 있다. 이 총재도 그럴 수 있고, 또 그것이 북이 그를 초청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실상’의 미명 아래 할 소리와 취할 태도까지 잃는 결과가 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야(야)의 목소리’는 사라지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총재의 방북에 거는 우려다.

북측은 지난 수십년간 대남 통일전선전략의 하나로 ‘제(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를 추진해왔다. 이번에 이 총재를 단독초청한 뒤 다른 야당을 초청한다면, 그것도 10월 10일의 ‘노동당창건’ 기념행사에 초청한다면 그것은 영락없이 남북정당 연석회의가 된다. 시대가 바뀌었다 해서 이 모든 문제를 다 무시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이 총재의 평양행은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한 재점검 속에 결정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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